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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스쳐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큰 기회'는 필요없다. 삶은 스쳐가는 것에 응답하는 것만도 벅차다.

by 독학력 by 고요엘

그저께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진행된 포럼에서 영어로 키노트 강의를 했다. 싱가포르나 영국에서야 늘상 영어로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는 해본적도 없고 오히려 어색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참석자들이 유럽 등에서 온 외국인들이어서 왜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을 섭외했는지는 포럼장에 가서야 납득이 되었다. 유럽 덴마크에 본사를 둔 재단이 매년 도시를 바꿔가며 연례회 포럼을 진행하는데 이번은 서울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 기회는 '스쳐감'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한국 방문시 아는 교수님을 만나고 나오는 자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다른 교수님 한분을 지인 교수님이 소개시켜주면서 시작되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시간은 20초 남짓이나 되었을까. 영국에서 왔다고 소개된 나를 마침 영어 강의가 가능한 교수를 찾던 차에 이 강의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 덕분이었다. 이 스쳐감 덕분에 한국에서 새로운 경험과 인연을 만들고 유럽 덴마크 본사에서 후속 강의를 하는 것이 타진되고 있으니 '스쳐감' 치고는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삶에 크든 작든 새로운 문이 열렸던 때를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은 예고된 정형화된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회들은 '큰 기회'라는 태그를 달고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사소함'으로 다가온다. 떠들썩한 기회일수록 뚜껑을 열어보면 속빈강정일때가 얼마나 많은가. 리스크 측면에서 봐도 놓치고 싶지 않을만한 큰 기회를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스쳐가는 사소함들에 진심으로 응답하는 것이 학습과 실행을 훨씬 높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리스크를 훨씬 줄인다.

과거를 반추해보니,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던 일, 책을 써서 출간했던 일, 처음으로 북토크라는 것을 해보았던 일, 처음으로 사업에 투자를 유치했던 일 등등 대부분의 일들의 시작은 모두 생각, 사람, 경험의 '스쳐감'이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열려있는 마음으로 답하기 시작할 때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어쩌면 '큰 기회'는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응답하는 것만도 벅차다.


혹시 이 순간에도 내가 미처 답하지 못하고 있는 사소한 '스쳐감'이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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