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력(獨學力) - 에피소드 2
운이 좋게도 나는 싱가포르 대학에서와 영국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두 곳에서의 클래스에는 보통 아시아 학생들이 반절 정도이고 나머지 반절은 서구권 학생들이다. 덕분에 서구적 사고 방식과 아시아적 사고 방식의 차이를 강의실에서 명확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일례로, 정해진 답이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아시아 학생들이 뛰어나다. 신속하게 손을 들어서 본인이 학습해서 기억하고 있는 답을 말한다. 그런데, 뚜렷하게 정해진 답이 없는 가치 판단이 필요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서구권 학생들의 생각 전개와 토론이 월등하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다.
“기계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생각이 가능할까요?”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들을 대체 우리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면, 인공지능은 대체 무슨 감정을 가지고 소설을 쓸까요?”
“인공지능에 인간의 뇌를 연결해서 상호 작용을 하게 된다면 이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부일까요 아닐까요? 그리고 만약 교통사고가 나서 인공지능 부분이 파괴되었고, 인간의 본래 뇌부분만 작동을 한다면 이 인공지능 부분이 의료보험에 적용을 받아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위와 같은 질문들은 사실 '정답'이 없다. 어떤 가상의 잠재적 가설을 세워놓고, 그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설득력 있는 논리들과 예시들을 스토리로 엮어내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누가 더 정확히 알고, 더많이 알고 있느냐는 게임보다는 어떤 세계관과 철학을 가지고 엮어내느냐는 것이 주장의 핵심인데, 이런 부분들에서 서구권 학생들이 현재까지는 낫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나는 전체적으로 서구적 사고 방식이 아시아적 사고 방식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다른 역사 속에서 살고 생존해왔고, 그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사고 방식을 세대에 걸쳐서 각자의 방식대로 습득하면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 여러 객관적인 지표들에서 서구와 아시아의 차이가 좁혀지거나 아시아가 일부 앞서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의 선진국들과 경쟁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각자의 스토리를 스스로 구상하고 설계하고 커뮤니케이션해가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수년 전에 서울대 이정동 교수님의 '축적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서 '개념설계 역량'이라는 것이 크게 화두가 되었는데, 바로 이 개념설계 역량의 차이가 서구권 학생과 아시아권 학생의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초등 교육과정에서 부터 쪽집게 과외, 시험 족보 등과 같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교육 기교'가 팽배해 있는 환경에서는 기본적으로 '헤매고 실패할 자유'를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는 '개념설계' 역량이 배양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주입식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는 독학력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다. 독학은 기본적으로 몇 가지 기본 전제 같은 것들이 있다. 독학은 답을 찾아서 헤매는 과정 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헤매는 것 자체를 낭비나 비효율로 인식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가치를 가져다 주는 필수적 경험으로 인식한다.
또한 독학은 자기 결정권에 대한 존중을 담고 있다. 남이 이미 해보고 만들어 놓은 것을 단순히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과정마다 본인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자체를 성장으로 가는 큰 자산으로 간주한다.
마지막으로, 독학은 학습 행위의 성과가 결국은 환경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학습에 있어서의 성과는 결국 학습 주체인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데 있어서 자유와 책임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