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브이로글_잘하고 싶지 않은데 잘하고 싶다
2019년 여름은 정말 더웠다
실제로 덥기도 했고 다른 의미로 뜨거웠다
갑자기 주어진 특집 프로그램
의지와 상관없이 정말 ‘주어진’ 기회 아닌 기회였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주어진 일이지만
잘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보는 눈이 많았고 멋지게 해내고 싶었다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헛된 꿈도 꿨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9월 중 딱 하루 2시간의 방송을 위해
5월부터 9월까지 정말 정신없이 일했다
어느 순간이 되니
아침에 출근해 새벽 퇴근을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느껴졌고
종편(‘종합편집’의 줄임말, 방송의 마지막 과정)하는
것까지 보고 집에 와서 쉬는데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내가 쉬어도 되나 싶었다
모든 일이 정리되고 소감을 묻는 자리
힘들었지만 쉽게 못해볼 값진 경험이라 말했다
그런데 한 마디를 덧붙였어야 했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거라고..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다시 원래 하던 프로그램으로 돌아갔지만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이상하게 체중이 계속 줄었다
아니 이상하게 입맛이 없었다
평생 다이어트를 숙제처럼 달고 살아왔거늘
입맛이 그 정도로 없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또 회식 때면 조금만 술을 마셔도 기억이 사라졌다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다
몸에선 이상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는데도
난 알아채지 못했다
그냥 나아지겠지.. 했다
팀원들 모두 ‘특집이 힘들었구나’ 하는데
‘힘들긴 했는데 뭐.. 끝났으니 됐다’ 했다
바보같이 나만 몰랐던 거다
... 번아웃이었다
그것도 상담 선생님 한 마디에 깨달았다
“두 달 만에 체중이 그렇게 빠지는데
안 이상했어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왜 몰랐을까 무리하고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내 속에서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걸
올 9월 한 달을 쉬면서 참 좋았다
내 몸에 박힌 번아웃이란 글자를
조금씩 지워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마냥 쉴 수 없으니
10월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아직 깨끗하지 않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스케줄이 여유로운 편이다
이제 2달을 준비한 방송을 앞두고 있다
편집은 끝났고 더빙 대본만 쓰면 된다
이번엔 주위 평가와 시선에 신경을 쓰지 말자, 싶다
지금은 일을 ‘잘’하는 것보다
나를 ‘잘’ 돌보는 일이 우선인 것 같다
아 근데 한편으로는 잘하고 싶기도 하다
잘하고 싶지 않은데 잘하고 싶은...
이 딜레마는 참 뭐라 답을 내리기 힘들다
그래도 끊임없이 그 속에서 저울질하다 보면
균형점을 찾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이제는... 마음을 다해 일하되, 아프도록 하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