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홍 Nov 21. 2020

축하를 즐기는 법

방송작가의 브이로글_부정적 생각을 걸러주는 필터가 있다면

올해는 정말 아이러니하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 잘 된 일 투성이

속으로 보기엔 상처 받은 일 투성이


한 번은 심리상담 선생님이 

내게 왜 기쁜 일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올해는 정말 축하받을 일이 많았다


큰 규모의 프로그램에 

새 메인작가로 누가 오느냐가 교양국 이슈였던 때

메인 경력 없는 내가 급 등장했더랬다

당시 친한 후배들에게 이 사실을 처음 말했을 때

그 엄청난 리액션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가족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아빠 나 메인작가 제의 왔어”

“진짜??? 완전 띵호와지!!! 우리 딸 자랑스럽다~”

그런데 정작 난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아 이제 그런 때가 왔구나.. 덤덤했다

그 많은 작가들을 내가 다 컨트롤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뿐이었다

4개월 후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아픔을 겪긴 했지만

그 덕에 지금은 다큐를 준비 중이다

이 또한 첫 경험이니 나쁜 일만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식욕부진 불면증 조울증 무기력증 등등

온갖 ‘증’들과 사투를 벌이던 올여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의욕적으로다가 집을 샀다

내년 봄에 입주하는 새 집이다

운이 좋게도 부동산 공부에 빠져있던

친구 도움으로 괜찮은 집을 찾았고

또 운이 좋게도 건축 전문가 친구 도움으로

오늘, 하자점검을 잘 마쳤다

그런데 난 어제 또 다른 친구에게

지금의 불행에 대해 한참 하소연을 했더랬다

요지는 집 산다고 돈을 다 끌어모아서

지금 당장 카드값을 걱정하는 처지라는 거였다

왜 난 굳이 집을 사서

그동안 밤새 키보드 두들겨가며 고생해서 번 돈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이렇게 쫄려 살아야 하는가


그런데 한 발자국 물러나 생각해보면

이건 배부른 소리다

오늘 지인들과 점검 후기를 나누고 있다 보니

난 또 축하를 받고 있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큰 축하를

올해는 두 번이나 받은 건데

왜 나는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축하를 받고 이를 마음껏 즐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다른 부차적인 건 다 떼어내 보자

그냥 가끔은 심플하게 살 필요도 있다

‘내겐 호텔로 보일 만큼 멋진 집이 있고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줄 프로그램도 있다’,

라고..







작가의 이전글 그래, 누구나 비밀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