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그냥 웃음이 났다.

"야호! 야호! 야호!"

순례길에서 악명 높기로 소문난 첫 코스 나폴레옹 루트를 걸었다.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이정표를 보면 아직 반도 못 온 길이라는 소문, 저 산만 넘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런 산이 끝도 없이 나오는 길이라는 무시무시한 소문을 퍼뜨리는 길이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욕심내지 않으면 난 이 코스를 못 넘을 것 같고 그러면 내 순례길의 첫 단추는 잘못 껴질 것이라는 걸. 평소에 남들보다 걸음도 두 배는 느리고, 등산도 싫어하는데 욕심을 내야 다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아스팔트 길 평지였고 수월했다. 걷다 보니 고지대라는 걸 증명하는 듯 눈과 낙엽이 뒤엉켜 있는 길을 만났다. 아직 도착하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욕심을 냈는지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열이 머리까지 뻗어서 왼쪽 눈이 시리고, 걸음이 잘못됐는지 오른쪽 골반이 틀어진 듯 너무 아파서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을 걷고, 쉬고를 반복했다.


나의 속도는 딱 30분이었다. 그 이상을 걸으면 몸이 그만 걸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장거리 걷기 결과가 시속 30분이라니.. 이렇게 해서 오늘 걸어갈 26.3km를 어떻게 다 걸어가나 속상했다.


중간쯤 왔을 때 앞뒤를 보니 다른 순례자가 없었다. 이 길의 맨 마지막 주자가 나였구나. 나였어. 한국에서만 뒤쳐지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뒤쳐지고 있었다. 아침에 달걀 2개와 요구르트, 머핀 하나를 먹고 먹은 게 없어서 배도 고팠고, 겨울이라 걷는 순례자가 적어 길에서 간식을 파는 곳도 없었다. 체력은 바닥이었고 살려면 힘을 짜내고 걸어서 오늘 가기로 한 마을에 도착해야 했다.


그때 이 모든 걸 잊고 걷게 해 준 스페인 친구 후안을 만났다. 그는 흰 바지에 민트와 보라색이 섞인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산에서 주운 커다란 나무 막대기를 들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도인 같았다. 어쩌다 발걸음이 맞아 같이 걷게 됐는데 내게 스페인 동요를 알려줬다. 산티아고를 걸을 때는 이 노래를 꼭 불러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스페인어로 바나나, 유비(야호), 지부(?)라는 단어만 알면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바나나 노래는 원 바나나 투 바나나 쓰리 바나나 하며 화음을 쌓는 곡이고, 유비와 지부는 계속 같은 단어를 리듬 따라 반복하면 됐다.


노래를 배우고 부르다 보니 벌써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외쳤다. “유삐!”,”유삐!!!” 도착해서 너무 신난 나머지 아마도 스페인어로 야호라는 뜻의 유비를 신나게 외쳤다.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고 그는 스페인어만 알았는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같은 길을 걸었다. 우린 정말 해가 다 지고 숙소에 도착했고, 숙소에는 저녁 식사권도 매진이라 굶어야 하는데 나는 왜 자꾸만 웃음이 날까?


혼자 걸으며 온몸이 아프고 온갖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후안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웃으니깐 그냥 웃음이 났다. 몸도 아프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없던 이 길이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