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유토피아

"여기가 어디지? 이곳에 난 왜 왔지?"

첫날 생장 사무실에서 만났던 미국인 부부를 쥬비리 숙소에서 다시 만났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짧은 대화를 나눴는데 나에게 비를 마시는 소를 봤냐고 물어본다. “못 봤죠…..” 그럼 “들판의 꽃은 봤어요?” “못… 봤… 죠...?” 양과 함께 찍은 사진을 함께 보여주며 양 떼는 봤냐고 물어본다. 머리가 멍해졌다. 같은 길을 걸었는데 난 뭘 봤지? 설마 다른 길을 걸은 걸까? 지도에는 한 길뿐인데… 난 도착할 목적지를 향해 걷기만 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눈을 뜬 아침 새로운 결심을 했다. 오늘은 어제저녁에 이야기 나눈 미국 부부처럼 천천히 주변을 보고 걸어보자고! 한 걸음 걷고 주변을 둘러보고 또 몇 걸음 걸어가 말 떼도 봤다. 그렇지만 머리에는 ‘이러다가 다음 마을에 도착해도 숙소에 빈자리가 없겠다. 아! 숙소 예약하고 맘 편히 걸을까? 그러다가 오늘 안에 진짜 못 걸어가면 숙소 비용이 날아가는데?’하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멈춰 섯을때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고 걱정만 더 늘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나는 미국 부부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나만의 속도에 맞춰서 다음 숙소로 가는 일이 내 길이었다. 나를 찾겠다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왔는데 누군가 걸어본 더 좋아 보이는 길을 따라가려고 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게 뭐지? 난 여기에 왜 왔지? 어떻게 해야 하지..?’ 어쩌면 순례길은 현실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