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숙소에서 만나자!"
순례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걸을 생각이었는데, 오롯이 혼자 5일 정도를 보내니깐 사람이 그리웠다. 생장에서 만났던 한국에서 온 순례자 언니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낮에는 각자 길을 걷고 저녁에 약속한 알베르게에서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서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부러웠다. 나도 같이 걷고 싶었다.
하지만 나와 언니의 걸음 속도는 완전히 달랐고, 내 속도를 알아차린 나는 내가 무리해서 뛰어가거나 언니가 날 배려해서 천천히 걸어야 우리가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마음을 접고 혼자 열심히 걷는데 언니 한테 연락이 왔다. “우리 오늘 이라체에서 잘 거야!” 내가 머물 예정인 마을에서 2시가 정도만 가면 있는 곳이다. 이미 내 체력은 방전상태지만 언니가 느리게 걸어간 만큼 내가 조금만 빠르게 가면 언니랑 친구들이랑 함께 걸을 수 있었다.
세상은 모질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1시간만 더 걸어가면 언니가 있는 숙소인데, 머리가 휑했다. 친구가 순례길 가서 피부 타지 말라고 생일선물로 준 모자가 없다. 너무 갈등 됐다. 친구가 마음 써준 모자를 찾으러 갈 것인지, 그 마음 모른 체하고 1시간을 더 가서 언니랑 시간을 보낼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하던 둘 다 내 마음은 편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때 모자를 벗어두고 물을 마셨던 장소가 머리를 스쳤다. 왜 하필 그때 스쳤을까 원망스럽지만 알게 된 이상 모자를 찾으러 되돌아가야 했다. 난 그런 사람이니까. 소중한것에 마음을 다 하는 그런.. 사람. ‘왜 하필 모자를 잃어버렸을까….’ 언니와 함께 가지 못해 더 뒤쳐지는 기분과 다시 뛰어야 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압박감이 싫었다.
얼마나 되돌아갔을까 물을 마셨던 장소에 도착했지만, 모자는 없었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붙잡고 파랗고 동그란 캥거루 그림이 있는 모자를 봤냐고 하니깐 못 봤다고 한다. 몇명에게 물어봤을까 한 순례자가 아마 못 찾을 거라고 한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여기서부터 얼마나 되돌아가야 모자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고 걸어온 길을 또다시 혼자 걷기 싫은 마음이 뒤엉켜 복잡했다.
중심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파도가 이쪽으로 오면 이쪽으로 쏴아 밀려가고, 저쪽으로 오면 저쪽으로 쏴아밀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