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 못 해도 몸은 기억해요.
요가 수업 중 매트에 서서 하는 동작을 안내하는 중에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기억 못 해도 몸은 기억해요. 그러니까 우리 지금 두 발로 잘 서는 연습을 해요.'
요가 동작에는 두 발을 매트에 딛는 동작이 많다. 일상에서도 두 발을 늘 땅에 딛고 있다. 삶을 사는 몸이기 때문에 발기반 움직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움직이기 전에는 발 전체를 잘 사용하도록 발가락 사이부터 발바닥 전체 근육을 스트레치 하는 토스쿼트를 한다. 그리고 두 발로 서서 눈을 감고 매트에 닿은 발의 감각을 느낀다. 두 눈을 감으면 평소 오른발과 왼발 중 어느 발에 무게를 더 싣는지, 발날 쪽으로만 서 있는지, 뒤꿈치 쪽으로 더 강하게 힘을 주는지 등 자신의 평소 습관이 명료하게 느껴진다.
잠시 후 발바닥 모두를 사용해 본다. 발도장을 찍었을 때 발 전체가 요가매트 위에 꾹- 도장 찍히도록 골고루 사용해 본다. 그렇게 상체를 숙였다 세우기도 하고, 두 발을 넓게 벌려 움직이기도 한다. 중간중간 발을 매트 위에 떼었다 내려놓으며 반복한다. 마지막쯤에는 다시 두 눈을 감고 매트에 선다. 또렷하게 발전체로 발도장이 찍히는 것이 느껴진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발을 내딛을 때 몸은 정직하게 발 전체를 골고루 사용한다. 나는 기억 못 해도 몸이 먼저 기억한다. "어 뭔가 발 느낌이 이상한데? 아! 평소 안 쓰던 엄지발가락 쪽 발바닥에 힘을 줘 걷고 있구나!"
몸처럼 마음도 기억할 수 있을까? 가끔 세상을 사는 것이 어젯밤 꿈같을 때가 있다. 그리고 오늘 내 눈앞에 펼쳐진 삶은 하늘의 구름이 지나가듯 흘러간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좋은 데 가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아이들은 다 까먹을 텐데 왜 좋은 데를 데리고 가요?" 근데 거기에 대한 제일 좋은 답은 '좋은 감정은 남는다.'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해수욕장인지 무엇을 먹는지는 잊어버려도, 부모와 함께 갔던 바다에 대한 좋은 감정이 남아서 나중에 바다에 가면 굉장히 편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요.
알쓸인잡 2회 김영하 작가의 말 중에서
‘마음도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김영하 작가의 말이 답이 됐다. 나 역시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놀러 간 바닷가를 기억한다. 동해였는지 서해였는지, 분명 맛있는 것도 먹었을 텐데, 이런 디테일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함께했던 가족의 웃음소리, 이불처럼 포근하고 봄의 햇살처럼 따뜻했던 분위기가 기억난다.
나는 보통 마음에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강하게 저장된다. 10년 넘게 써온 나의 일기장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써 내려간 일들이 더 또렷이 글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요가를 하며 두 발에 건강한 기억을 새겼던 것처럼 마음에도 좋은 감정을 물들이고 싶다.
22년도의 마음에 물든 좋은 감정
• 연인과 놀이공원 퍼레이드를 보며 5살처럼 웃고, 춤추고, 흥얼거렸다.
• 다 함께 모인 이움 크리스마스 파티는 따뜻했다.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다정했다.
• 아빠와 함께한 차 없는 강릉 여행은 열정적이었다. 우리 둘은 비와 바람을 가르는 힘찬 마음으로 여행했다.
• …
• 기억이 나면 채워 둘 공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