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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 Apr 26. 2021

요가와 삶

요가를 시작한 계기

나는 18년 차 직장인이고 17년 차 요가 수련인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친구 따라 요가를 시작하게 됐다. 대학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 중 김민진이라는 친구와 2년 이상 기숙사 룸메이트로 같은 방을 썼다. 우리는 마음이 잘 맞아 기숙사에서 영어로 대화하기, 새벽 조깅, 해동검도, 스퀘시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다. 


나보다 먼저 졸업 해 직장 생활을 하던 그 친구가 어느 날 요가를 시작했는데 너무 좋다고 말했다. 기분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운동을 하고 마지막엔 송장 자세로 누워 휴식을 취하다 보면 선생님 목소리에 따라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발가락도 꼼지락꼼지락 해서 몸을 깨워주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가 확 풀린다고 했다. 그때는 2003년쯤으로 한창 연예인들로 인해 전국적으로 요가 붐이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친구는 서울에 있었고 나는 천안에 있었는데 당시 천안에는 요가원이 별로 없었다. 나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때부터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았는데 마침 요가원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그것에 바로 등록하고 시작하고 싶었지만 이미 정원이 차서 등록이 어려운 상태였다. 결국 집 근처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클래스를 등록하고 시작했는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드디어 요가를 하게 됐다는 즐거움이 더 컸기에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몇 달 뒤 정식으로 요가원에 등록하고 그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약 6년간 꾸준히 그 요가원을 다녔다. 나는 그 요가원을 꾸준히 다녔지만 그 요가원은 여러 차례 새 주인을 맞이했다. 신기하게도 그 장소는 요가를 하기에 적합했는지 업종은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 요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덕분에 나는 한 장소에서 회원들에게 까칠해서 망한 뒤 손 털고 나간 선생부터 차곡차곡 실력을 쌓은 실력파 선생까지 아주 다양한 선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요가원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정도로 그 무렵 나만큼 그곳에서 오랫동안 요가한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신뢰하는 친구의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관심을 갖게 되어 막연한 호기심에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요가가 너무 좋아서 좀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에 지도자 과정에 등록했다. 무려 6개월간 서울과 전라남도 화순을 오가며 공부했는데 거의 매 주말을 그렇게 다녔다. 지도가 과정을 하면서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5일 동안 단식을 체험해 보기도 했다. 지도자 자격증 덕분에 요가원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고 회사 동료들을 위해 요가 수업도 열었다. 


그렇게 요가를 꾸준히 하면서 새벽엔 일본어, 낮에는 영어, 퇴근 후에는 길게 하진 않았지만 문화센터에서 바이올린도 잠깐 배웠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면서 성당의 청년회 임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20대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한 것도 있겠지만, 꾸준한 요가 수련으로 다진 체력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요가는 내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중심이 잘 잡힌 삶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중 세 번째 습관인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와 같이 내게 소중한 것이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고 아마 평생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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