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락 May 11. 2021

소소한 에세이

1인 여행의 추억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 는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이다. 좋아하는 영화는 다시 봐도 재미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1년간 혼자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스토리이다. 난 좋아하는 나라들을 주인공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라 이 영화가 좋은데, 남편은 우선 이혼하고 시작하는 스토리라 그런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나는 혼자 여행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더 오픈 마인드가 되는 것 같다.


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에 독일북부 브레멘이라는 도시에서 6개월 동안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독일은 복지가 좋아서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참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대중교통이다. 학생 할인 같은 거였는데 그리 비싸지 않은 패스를 하나 사면, 그것으로 시내는 물론 한 시간 내 인근 지역에서는 어디서든 기차를 탈 수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서 그 패스 한 장과 필름카메라, 여행 책을 챙겨 기차를 타고 주변 도시를 여행했다. 함부르크나 하노버 같은 대도시를 비롯한 작은 시골마을까지 구석구석 다녔다.


한번은 하노버 역 앞의 넒은 광장에서 여행 책을 살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빨간색 베레모를 쓴 멋진 턱수염의 백발 노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처음 온 낯선 도시에서 여행 책을 들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동양인 여학생이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하노버에 처음이냐며 말을 건네더니 본인이 직접 시내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와~ 오늘 운수 대통이다~!’ 속으로 생각하고 그 제안에 즉시 감사히 응했다. 본능적으로 그 분이 나를 해칠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은 하노버 시청에서 근무하다 정년 퇴임을 한 전직 공무원이었다.


덕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도시가 어떻게 다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건됐는지 역사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 함께 오래된 대성당 및 하노버 거리를 걸으며 재미있고 다양한 도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 여행 책 하나에 의존해 돌아다녔더라면 많은 것을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 분을 통해 보고 들으며 의미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 분은 전문 안내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넉넉한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뒤 그의 길을 갔다. 그 노인에게서 마음의 선물을 받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전화번호나 주소라도 하나 받아올 걸, 그때는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 함께 사진 한 장만 남긴 것이 못내 아쉽다.

또 한번은 미국 출장 중 주말에 기차를 타고 보스톤으로 당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다음 역에서 어떤 여성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영국에서 출장 왔다는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목적지가 나와 같은 보스톤 파인아트 미술관임을 알게 됐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반나절 여행을 함께 했다. 함께 미술 작품 구경을 했고 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은 뒤 헤어졌다.  


홀로 하는 여행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이벤트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혼자 여행을 가면 더 용감해 지는 것 같다. 혼자서 모든 상황을 해결해야 하니까.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도 익숙해지고 스스럼 없이 도움을 요청하게 되기도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2인 이상 여행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나는 가끔 1인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소한 에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