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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May 10. 2019

#21. enough for life, 치앙마이(1)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나에게 1년은 13개월이다. 1년 365일을 7일로 나누면 약 52주, 이를 한 달 단위인 4주로 나누면 13개월이 된다. 12개월 열심히 일하고, 1개월은 신나게 놀자. 서른이 되며 나 스스로 정한 내 삶의 속도이자 방향성이다. 신나게 노는 한 달은 보통 외국에 나갔다. 터키를 시작으로 러시아, 베트남, 태국, 인도, 미국, 캐나다로 떠났다. 시작은 혼자였지만 둘이 되어 여행할 때도 있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가’가 내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여행지에서도 요가원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요가를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으로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태국 치앙마이는 그 시작점이다. 언젠가 요가 선생님께서 나와 잘 맞을 거라며, 꼭 한 번 다녀오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마음속에 품고 지내던 2017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치앙마이로 열흘간 휴가를 다녀왔다.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엄마와 함께 가게 된 여행. 결과적으로는 그 때문에 혼자일 때보다 조금 더 다채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그 열흘간의 기록이다.


태국 치앙마이의 요가원 ‘Satva Yoga’


비행기 좌석에 앉아 치앙마이 여행 책을 펼쳤다. 이미 문 닫았을지 모를 가게 정보만 꽉 차있어, 몇 페이지 읽다 책장 구석에 쳐 박아둔 그 책. 여행지에 대해 묻는 엄마에게 며칠 전 그 책을 꺼내 줬는데, 다시금 만난 그 책 안엔 인덱스 스티커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비행시간 동안 하나하나 읽어가니, 내가 몰랐던 엄마의 취향이 읽혀 이 책이 문득 고맙고 또 한편으론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도 여자였구나. 내가 좋아하는 걸, 엄마도 좋아하는구나.’ 이 당연한 걸, 너무도 오래 모르고 아니 모른척하며 살았던 나였다.
 

긴 비행을 마치고, 우리는 호텔에서 나온 픽업 차량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예약한 숙소는 치앙마이 주요 관광 지역에서 조금 벗어나 관광객보단 현지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었다. 요가원에서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했고, 근처에 큰 재래시장이 있어 마음에 꼭 들었다. 내가 열흘간 다닌 요가원은 ‘satva yoga’로 지금은 여러 매체에 소개되어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수련실은 선생님이 살고 있는 집 앞마당으로, 자연 친화적인 치앙마이 특유 분위기를 꼭 빼닮았다. ‘해피’란 이름의 귀여운 강아지가 잊을만하면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듯 업독, 다운독 자세를 선보여 수업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대나무 기둥에 달린 로프와 블록, 스트랩, 휠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는 아헹가 요가 수업을 주로 진행하기에, 요가 초급자부터 숙련자까지 모두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실제 엄마는 이곳에서 요가를 처음 접했다. 선 자세에서 허리를 앞으로 숙였을 때, 팔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며 수업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던 엄마는 어느새 로프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 즐겼다. 물론, 어지러워 사진만 찍고 금방 내려와 눕기 일쑤였지만.


태국 치앙마이의 요가원 ‘Satva Yoga’


여행시간 내내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공복 상태로 요가원에서 두 시간 가량 수련을 한 뒤, 가장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첫 끼로 먹었다. 엄마는 남이 해준 밥을 먹고 남이 치워준 방에서 잔다며 즐거워했고, 나는 갑작스런 회사 생활로 무너졌던 심신의 균형을 회복하는 시간이라 좋았다. 발길 닿는 곳 어디에나 초록의 물결이 굽이쳐 웃음이 났다. 하지만 40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는 꽤 힘들었다. 4일째 되던 날, 결국 나는 야시장에서 엄마에게 성질을 내고 말았다. 해가 져도 그곳은 여전히 더웠으며, 그 때문에 몸은 끈적끈적한데 사람은 붐벼 맨살이 부딪혔고, 그 와중에 엄마는 호기심에 여기저기 다니며 내 시야에서 자꾸만 사라졌다.
 

소리치고 나서보니, 엄마는 매우 작아져 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 이방인이 가득한 그곳에서, 유일하게 기댈 사람인 내가 화를 내자 요가 수련과 타이 마사지덕에 쫙 펴졌던 엄마의 어깨와 등이 급속도로 쪼그라든 것이다. 순간 아차 싶었다. 재빨리 세상 시원하고, 달달한 수박 주스를 사서 나눠 마셨다. 그리고 다짐했다. 엄마의 여행을 존중하자. 지금은 우리의 여행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여행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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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요가 지도자 과정 교육이 휴강이어서, 이번 주는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의 이야기를 먼저 꾸려보았습니다. 다음 주에 치앙마이 요가 여행 편을 마무리 짓고, 다시 'Chapter1. 얼렁뚱땅, 요가 지도자 과정(TTC)'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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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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