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빈 May 17. 2019

#22. enough for life, 치앙마이(2)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시차가 있는 곳으로 여행가기를 좋아한다. 고로 많이들 가는 일본은 여행지 후보에서 늘 제외되는데, 그 이유는 나의 첫 여행과 관련이 깊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처음 타지에 가본 게 고1 여름 방학 때 다녀온 미국 뉴욕이다. JFK공항에서 본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또 그들이 풍기는 알싸한 냄새는 내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왔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해줬다. 게다가 긴 비행에도 13시간의 시차 덕에 다시금 떠나온 날로 되돌아가 마치 내가 ‘시간 여행자’가 된 듯 묘한 기분마저 선사했다. 그때부터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는 완전히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살며, 시차가 있어 나를 과거 혹은 미래로 데려다 줄 수 있는 곳. 그런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5월의 치앙마이는 우리보다 2시간 느리지만, 계절은 한 발 앞선 무더운 여름이었다. 전날 밤 야시장에서 엄마에게 성질을 부렸던 나는 무더위 자체가 불쾌지수를 높인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요가원에서 수련을 마친 뒤, 엄마에게 오늘은 우리 여행의 ‘일요일’을 갖자고 제안했다. 실제 그날은 한낮의 기온이 무려 45도를 웃도는 날이었다. 엄마는 내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우리는 호텔에서 빌린 자전거 바구니에 매트를 말아 넣고, 근처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노랗게 잘 익은 망고와 드래곤 후르츠, 파파야, 수박 등 다양한 재철 과일과 스프링 롤, 초코 케이크,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 창(Chang)까지 바리바리 사들고 호텔 수영장 선 베드에 자리를 잡았다.


태국 치앙마이의 요가원 ‘Satva Yoga’


먹고, 수영하고, 태닝하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결국 책을 읽었다. 휴식 차 여행을 떠나왔기에 치앙마이에선 모든 드라마와 대본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국 가져온 책이라곤 평소 좋아하던 에세이 두 권이 다였다. 카피라이터 김민철 작가님이 쓴 <모든 요일의 기록>과 <모든 요일의 여행>이 그것이다. 엄마와 나는 책을 번갈아 읽으며, 작가님과 우리가 지닌 평행이론에 대해 떠들었다. 내가 태어나고 10대 시절을 온전히 보낸 망원동과 그녀가 다닌 여행지, 그리고 책에 있는 치앙마이 사진에 대해서.



해가 지고, 우리는 우버를 타고 타이 마사지 숍에 갔다. 요가원 외에 매일 출석한 곳이기도 한데, 다리와 전신을 각각 한 시간씩 총 두 시간의 마사지를 받아도 팁을 포함해 한 사람 당 2만원이면 충분했다. 요가 덕분에 타이 마사지를 받기에 최적화 된 나는 마사지사의 모험(?) 또한 기꺼이 즐겼다. 그에 반해 엄마는 낯선 사람의 손길 자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런 엄마에게 어느 날 남자 마사지사가 배정됐다. 잠시 고민을 하던 엄마에게 말했다. 젊은 남자가 엄마의 온 몸을 정성스레 마사지해주는 시간이 살면서 얼마나 되겠느냐, 이 또한 즐기라고. 엄마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용기(?)를 냈다.
 

태국 치앙마이의 요가원 ‘Satva Yoga’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행의 마지막 날이 왔다. 여행의 결과에 대해선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연애할 때보다 얼굴에서 더 빛이 났다. 요가 수련과 채식 위주의 건강한 식사, 그리고 매일 두 시간씩 받은 타이마사지의 효과도 보았겠지만 치앙마이가 내뿜는 초록 초록한 기운 자체가 나와 꽤 잘 맞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경유지인 방콕에 도착했는데, 일이 터졌다. 엄마가 휴대폰을 비행기에 두고 내린 것이다. 바로 울먹이며 자신을 자책하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활짝 핀 꽃이 바로 시들어버린 꼴이었다. 이상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다, 꼭 찾아주겠다.”며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공항을 돌며, 묻고 또 확인하며 휴대폰은 찾았지만, 그 잠시 동안 엄마는 정말 작아졌다. 야시장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나에게 미안했는지 “영어를 할 줄 알아야 되는데.”라며, 계속 한탄하는 엄마에게 말했다. 영어도, 요가도 잘 하는 나를 만들어 준 게 바로 엄마라고. 그러니 엄마는 지금처럼 내 옆에 건강히 있어 주기만하면 된다고. 그날 일기를 쓴 비행기 안에서도, 여행에 다녀와 친구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때를 생각하니 또 다시 울컥한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다음 여행을 고대하는 엄마가 아직 내 곁에 있어서.


.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다음 주에 TTC이야기로 돌아올게요.


.

구독 및 공감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제 일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프로필에 있는 인스타 계정으로 놀러 오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21. enough for life, 치앙마이(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