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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Jun 21. 2019

#31. 우연이 겹치면 인연, 퀘백(1)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두 가지다. 요가 수련이 중점인 여정인지 아니면 관광을 하며 요가 수련 또한 즐길 수 있는 곳을 갈 건지. 캐나다 퀘백은 후자에 속한다. 퀘백을 가게 된 건 우연이 두 번 겹치면서다. 뉴욕에서 잠시 쿠바에 갔다 올 생각이었는데, 알고 보니 불가능한 여정이었다. 2018년 당시, 미국과 쿠바 간 외교 상황이 좋지 않아 '뉴욕 발-쿠바 행' 비행기 탑승이 외국인조차 (공식적인 행사 외엔) 법적 금지였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경우의 수였다. 그렇게 벙 찐 상태로 구글맵을 이리 저리 살피다 뉴욕의 북쪽, 캐나다 퀘백이 눈에 띄었다. tvN <도깨비> 속, 그 아름다운 배경이 아닌가. 김신(공유)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자. 그렇게 잠시 뉴욕을 떠나 퀘백으로 향했다.
 

퀘백으로 가는 여정은 예상외로 힘들었다. 경비를 조금 아끼기 위해 토론토를 경유하는 표를 끊었던 게 낭패였다. 비행기 연결 시간이 하루 전 날 변경된 것도 모자라 공항에서 또 한 번 연착되며, 총 9시간을 대기하다 겨우 퀘백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이정도면 뉴욕서 야간버스를 타고 퀘백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늦은 밤이란 핑계로 택시기사는 바가지를 씌웠고, 숙소키는 키 박스에 들어있었는데 그놈의 박스가 도통 열릴 생각을 안했다. 다행히 에어비엔비(airbnb) 호스트의 친절한 안내 덕에 무사히 집 안으로 들어갈 순 있었지만, 내부는 주방 시설도 없고 말 그대로 ‘냉골’이었다! 배고프고, 춥고, 또 피곤했던 엄마는 툴툴대기 시작했다. 같은 이유로 예민함이 극에 달했던 나는 “자유 여행은 다 이런 거야! 편하게 다니려면, 패키지 가야지?”라고 쏘아 붙이곤, 뒤돌아 캐리어를 열었다.


캐나다 퀘백의 요가원 'Soham Yoga Bis'


그 순간, 아찔한 냄새가 나를 반겼다. 뉴욕 한인 마트에서 사온 깍두기가 캐리어 안에서 터진 것이다! 나의 비명에 언제 싸웠냐는 듯, 모녀의 협동이 시작됐다. 엄마는 재빨리 움직이며 새빨간 국물에 잠식당한 내 옷을 살리는데 집중했고, 나는 엄마가 마무리한 옷들을 붙잡고 요리조리 살펴보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긴급 조치를 취한 뒤, 우리는 우선 허기진 배를 채웠다. 숙소 내 유일한 주방용품인 전자레인지에 돌린 햇반에 감히 내 캐리어 안을 박차고 나온 그 깍두기를 반찬삼아서. 배가 좀 부르니, 그제야 엄마의 지친 얼굴이 보였다. 미안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나보다 20여년 더 산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들한텐 그렇게 잘하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왜 부모님에겐 잘 못하겠는지, 끝내 화내서 미안하다는 말 대신 “원래 집 떠나면 개고생 이야!”라 말하며 잠을 취했다.
 

다음 날 맞이한 퀘백은 지난밤의 악몽을 싹 지워줬다. 발길 닿는 집, 골목 하나하나가 모두 그림이었다. 또한, 현지인들의 미소와 배려 또한 빛났다. 매일 오전 우리의 안부를 묻는 호스트를 비롯해, 길 위에서 만난 누구나 다정이 몸에 배어있었다. 뉴욕 맨하탄에선 에어팟을 끼고 신호 따윈 무시하며 시크하게 걷던 뉴요커들이 꽤나 멋져 보였는데, 사실 그들로 인해 나 또한 발걸음이 빨라졌고 어딜 가도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에 늘 긴장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퀘백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줬다. 사람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의 분위기도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이라 잠시 머무는 나 같은 여행객도 그 모습을 자연스레 따라가게 됐다.


캐나다 퀘백의 요가원 'Soham Yoga Bis'


관광을 하다 해가 저물 무렵엔 퀘백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는 리스토러티브 요가(restorative yoga, 회복/치유 목적의 요가) 수련을 하러 갔다. 내가 방문한 요가원은 숙소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Soham Yoga Bis’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곳의 분위기가 지금까지 여행하며 갔던 수많은 요가원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요가원은 직사각형의 수련실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워 상하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균형 잡힌 모습이었고, 정면 벽에는 자주 접하는 ‘옴(ॐ, OM)'표시 대신 손바닥을 마주한 묘한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부를 넋 놓고 바라보던 그때, 지는 해의 빛이 창 사이로 스며들어왔다. 그 따뜻한 분위기와 코끝을 스친 인센스 향이 아직도 진하게 기억남아 언젠가 집필실 겸 수련실을 꾸리게 된다면, 그와 닮은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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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요가 지도자 과정 교육이 휴강이어서, 이번 주는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편을 발행했습니다. 다음 주에 퀘백 요가 여행 편을 마무리 짓고, 다시 'Chapter1. 얼렁뚱땅, 요가 지도자 과정(TTC)'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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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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