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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Jun 28. 2019

#32. 우연이 겹치면 인연, 퀘백(2)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캐나다 퀘백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여서, 현재도 프랑스계 주민이 92%를 차지한다. 그 때문에 ‘Soham Yoga Bis’에서 진행된 리스토러티브 요가(restorative yoga, 회복/치유 목적의 요가) 수련 역시 ‘프랑스어’로 진행됐다. 선생님이 해주시는 주옥같은(?) 말씀은 그저 잔잔한 음악과도 같았는데, 다행히 스트랩과 볼스터, 블럭 등의 도구가 우리 사이의 간극을 메워줬다. 특히, 내가 좋았던 순간은 볼스터 위에 다리를 기대 누운 엄마를 볼 때였다. 자신은 유연하지 않아 요가는 못한다던 엄마가 태국 치앙마이를 거쳐 이곳에 와서부터는 도구를 이용해 자신만의 요가 수련을 즐겼다. 가끔 어려운 동작을 할 땐,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쉬면서 익숙하게 수련을 이어가는 다른 요기들을 바라봤다. 그들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여행 내내 나는 엄마가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 점이 좋았다. 20대 초반에 결혼해 시집살이 꽤나 당했고, 만삭에도 50kg을 넘지 않은 작은 몸으로 나와 동생을 낳아 길렀으며, 아빠의 사업 실패로 각종 고난을 겪은 엄마는 어느덧 환갑이 가까워진 지금까지도 자기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다. 반면에 같은 시간 속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한 적이 없다. 가고 싶은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 시험도 여러 번 쳤고, 러시아로 유학을 다녀왔으며, 좋은 직장에 취업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릴 나이에 가장 답 없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내가 봐도 정말 이런 부도수표가 없다!) 그래선지 가끔은 그 모든 선택을 한 나보다 그 선택들을 단 한 번의 반대 없이 믿어준 부모님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마도 엄마는 당신의 딸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유의지를 갖고 살길 바란 거 같다.


캐나다 퀘백서 머문 'Airbnb 숙소'


숙소에서도 종종 엄마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 한 켠 에서 내가 마이솔 수련을 하고 있을 때, 엄마는 뒤편에 놓인 소파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 수련 중에 내가 뱉는 호흡 소리나 매트를 디디는 발자국 소리가 혹여 방해될까 조심조심 수련을 이어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바로, 맥주를 사랑하는 엄마. 한국에서는 술 한 잔도 못하는 아빠 때문에, 욕망을 다스리며 이틀에 한 번 꼴로 맥주를 마시는 엄마였다. 하지만 나와 단 둘이 여행할 때는 눈치 볼 사람도 없을 뿐더러 눈치 보는 그분 욕(?)을 마음껏 해도 되는 유일한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맥주는 순식간에 동나곤 했다. 이곳은 캐나다 퀘백이니 블랑(1664 blanc, 프랑스산 밀 맥주)만을 고집한 것도 다름 아닌 엄마였다.
 

그렇게 퀘백에서 3일째 되던 날 밤, 엄마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북미 3대 성지 순례지 중 하나인 ‘성 안느 드 보프레 성당(Sainte Anne de Beaupre)’. 엄마를 그곳에 꼭 데려다 주고 싶었지만, 성당이 외곽 지역에 위치해 교통편이 아무리 검색해도 여의치 않았다. 혹시나 싶어 에어비엔비(airbnb)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다행히도 하루 두 번 그곳을 오가는 대중 교통편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찾아간 성당은 예상보다 꽤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기적의 성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1662년 파선당한 절름발이 선원이 성녀 안나의 도움으로 목발 도움 없이 걸어 나간 이후로 기적 같은 일이 수차례 일어나 순례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엄마는 열심히 기도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기도했다. 엄마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혹시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생각 할 만큼, 이제 나도 꽤 단단해 졌다는 걸 체감한 날이기도 했다.


캐나다 퀘백서 머문 'Airbnb 숙소'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마지막 밤에 걸맞게 예쁜 옷을 차려입고 호스트가 추천한 프렌치 식당에서 베지테리안 코스 요리를 먹었다. 지난 밤 그렇게 신나게 욕(?)을 해놓고도, “아빠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하며 끝내 눈물을 훔치던 엄마. (부부라는 운명 공동체는 나에겐 정말 가늠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영역이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잠시 쇼핑에 나섰다. 우연히 인센스 향에 이끌려 들어간 상점은 무려 인도 소품 상점이었는데, 그곳엔 인도 여행을 마치며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액세서리 케이스와 꼭 닮은 인센스 홀더가 있었다. 또 그 옆 편집숍에서 사온 점프 수트도 알고 보니 ‘Made in india'. 마치 퀘백에 있는 나를 인도가 부르는 거 같은 밤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에서 내일을 꿈꾸며 잠드는 건, 나 또한 변치 않는 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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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TTC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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