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빈 Sep 13. 2019

#24. 힐링의 길로 인도해준 시간, 델리(2)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델리에서의 첫 요가 수업은 질적인 측면에선 지불한 비용에 비해 매우 아쉬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된 장소가 꽤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델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간일 만큼! 요가 수업은 뉴델리에 위치한 로디 가든(lodhi garden)이란 공원에서 진행됐는데, 이곳의 분위기는 진정 ‘샨티(shanti, 평화)’였다. 공원 중앙엔 고성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 앞으로 펼쳐진 잔디밭은 ‘yoga ground’가 따로 지정되어 매일 아침 인도 현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요가 수련을 이어간다. 또한, 현지인들에겐 웨딩 사진 스폿으로 꽤나 인기가 많은 곳인지 군데군데 촬영 중인 예비부부들도 많이 보였다. 수업만 받고 떠나기엔 아쉬워, 나는 수련이 끝난 뒤에도 꽤 오랜 시간 공원에 머물렀다.
 

공원을 한 바퀴 천천히 걷다보니,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깊은 호흡 명상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그 깊은 호흡 소리를 몰래 엿들으며(?) 쉴 겸, 나는 벤치 앞 풀밭에 매트를 깔고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웠다. 호흡 소리를 배경삼아 사바아사나 자세를 취하니, 어느새 단잠에 빠져버렸다. 짹짹 시끄럽게 우는 새들의 지저귐이 아니었다면 언제 깼을지 모를 만큼. 눈을 떴을 때, 내 곁에 성큼 다가온 다람쥐와 산들 산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 요가 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멋진 공원에 와 봤겠는가 싶어 수업에 대한 불만보단 감사한 마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이곳에 와서 셀프 수련을 이어가야지 다짐했다.


인도 뉴델리의 중심지 '파하르간즈(paharganj)'


공원 입구에서 다시금 오토릭샤를 타고, 파하르간즈로 이동했다. 유심을 사서 끼우곤 골목골목을 거닐며 상점을 구경하고, 한국인을 반기는 현지인들과 종종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여자 혼자 인도 여행은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호텔 카페테리아에 앉아 야채 믹스 커리와 갓 구운 갈릭 난을 먹으며, 내일 이곳에 도착할 예정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호텔 픽업 기사가 시간 맞춰 공항에 나갈 것임을 다시금 알려주고, 비자 라인에 되도록 빨리 서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친구가 온 다는 사실에 설레선 잠을 설친 새벽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비행기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다시금 출발지로 회항해, 다음 비행 편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음에 안도하곤, 호텔 프론트로 내려갔다. 친구의 비행편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야기를 전해 듣던 호텔 매니저는 내게 힌두신의 보호를 받으라며, 미간에 빨간 줄을 쓰윽 그려줬다. 친구가 안전히 델리에 도착할 것을 바라며, 샤워할 때도 선을 보호하기 위해 고양이 세수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내 1층 카페테리아에 앉아 오믈렛과 따뜻한 티 한 잔을 마시며 오늘의 일정을 그려봤다. 주요 관광지는 친구와 함께 가면 좋을 거 같아 제외하곤, 다른 장소를 물색하는데 마침 인근에 현대 미술관 있어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유심도 달았겠다, 목적지를 찍고 인도에서 첫 우버를 호출했다.


인도 뉴델리의 중심지 '파하르간즈(paharganj)'


하지만 웬걸. 휴관일인 월요일도 아니었는데, 미술관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축제 때문이었다. 그렇다. 인도는 일 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등 50개가 넘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인도 국민들이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모든 종교 축제를 열정적으로 즐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힌두교의 봄 축제 ‘홀리(holi)’외에,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축제는 모두 9월과 10월 사이에 몰려있다. 9박 10일의 힌두 명절 나바라트리(navaratri)를 시작으로, 무슬림의 라마단(ramazan), 힌두교의 신 라마와 그의 아내 시타를 납치한 라바나 사이의 종전을 기념하는 두쉐라(dusshera) 축제가 그 뒤를 잇는다.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축제이자 인도 판 크리스마스라고도 불리는 드왈리(diwali) 축제에선 인도인들의 열정이 절정을 이룬다.
 

내가 인도에 머문 기간은 마침 나바라트리 축제와 10월 2일 간디의 생일도 껴있던 주간이라 어딜 가도 꽤나 시끌벅적했다. 덕분에 미술관을 공치고, 오토릭샤를 타곤 인디아 게이트(1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인도인들을 추모하는 거대 위령탑)를 둘러보곤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 지쳐 코넛 플레이스로 이동했다. 각종 상점과 호텔 등 편의시설로 가득한 곳에서 나는 재빨리 스타벅스로 향했다. 몸이 지쳤을 땐, 익숙한 것으로 달래는 게 최고다.


.


다음주에 델리 요가 여행(3)편이 이어집니다.


.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

구독 및 공감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제 일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프로필에 있는 인스타 계정으로 놀러 오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23. 힐링의 길로 인도해준 시간, 델리(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