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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Sep 20. 2019

#25. 힐링의 길로 인도해준 시간, 델리(3)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나에겐 익숙지 않은 9월 말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더불어 나바라트리 축제로 여기 저기 문 닫은 곳이 많은 뉴델리. 나의 선택은 코넛 플레이스의 스타벅스였다. 2층 소파 자리에 편히 기대 앉아 서울에서 가져온 책을 읽었다. 여행을 떠날 땐, 보통 여러 권의 책을 챙기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책을, 아니 활자 자체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빈손으로 가면 후회할 거 같아 딱 한 권을 챙겼는데, 그게 박준 시인의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었다. 그 속엔 작가가 건네는 다정한 말들이 가득해,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 검토해야할 작품들이 쌓이며, 어느 순간부턴 눈대중으로 재빨리 페이지를 넘기기 바빴던 나에겐 그 마음이 실로 꽤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반가웠다, 음미하듯 책을 읽는 그 시간이.
 

한참 책을 읽다 호텔로 돌아간 그날 밤, 드디어 친구가 델리에 도착했다. 실은 종일 조마조마했었다. 고장 난 비행기가 점검되는 동안, 대체 항공편이 나왔지만 그 또한 계속 미뤄지며 친구는 약 이틀 간 공항에 갇혀있었다. 기다림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그게 또 꼼짝달싹 할 수 없는 공항 안이라 얼마나 갑갑했을지. 나였다면 이미 방전 상태, 인도고 뭐고 서울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바꿔 생각해보니, 델리에 편하게 머물고 있던 내가 괜스레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다음날은 이미 델리 관광청에 예약해 둔 아그라 투어가 예정돼있었다. 먼 곳에서 돌고 돌아 이제야 인도 땅을 밟은 이 아이에게, 새벽부터 먼 길을 나서자는 형국이라 나는 대역 죄인이 따로 없었다.


인도 뉴델리의 중심지 '파하르간즈(paharganj)의 루프탑 식당'


호텔에 막 도착한 친구를 와락 품에 안았다. 고마웠다. 무사히 서울이 아닌 이곳에 와준 그녀가. 친구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자신이 오늘이라도 도착해서 다행이라며, 내일 우리가 함께 볼 타지마할이 너무 기대된다고 말했다. 역시, 이틀 간 공항에 갇혀있었어도 씩씩함을 잃지 않는 내 이상형(?)다웠다! 다음 날 새벽, 우리는 아그라에 데려다 줄 관광버스를 타러 델리 관광청 앞으로 갔다. 인도에서 우버를 다 타다니. 친구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택시 안에서 새삼 놀라워했는데, 나도 사실 신기하긴 했다. 그만큼 치안 상태나 교통편 등이 우리가 짐작한 인도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벌써 인도 여행 삼일 차에 접어들었던 나는 태국을 여행할 때와 마찬가지란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태국만큼 기사님들과 영어로 소통하긴 매우 어렵지만!
 

나는 친구가 델리에 도착하기 전,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봤다. 자전거 릭샤, 오토 릭샤, 그리고 사설 택시 우버까지. (물론, 코너를 돌다 문이 벌컥 열리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꽉 차게 타는 대중 버스는 감히 시도도 못했다!) 릭샤는 워낙 많아 길가에서 쉽게 잡아 탈 수 있지만, 문제는 가격 흥정이다. 얼마 정도가 적정선인지 여행자인 나로선 가늠되지 않기에, 일단 부르는 값을 깎고 봐야하는데 나는 그 과정이 별로 재밌지 않다. 일단, 가격을 두고 기사님을 괜히 의심해야 하는 게 싫다. 한국 돈으로 따지면 실제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을 가지고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굳이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고. 그런 나에겐 역시나 우버가 제격이었다. 목적지를 정확히 입력만하면, 가격과 도착 예정시간을 바로 알 수 있고 실제로 주행을 잘하고 있는지 지도로 계속 확인하며 갈 수 있으니 기사님을 의심 할 필요도 없었다.


인도 아그라의 궁전 형식 묘지 '타지마할(Taj Mahal)'


우버 덕에 안전히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서울에서 미리 뽑아간 예약 티켓을 내민 뒤 아그라 행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여행 중인 외국인들로 가득할 줄 알았던 버스 안엔 인도 현지인들이 대다수였는데, 이는 또 그놈의 축제 때문 이었다! 무슬림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타지마할로 가는 현지인들. 그 덕에 아그라로 들어가는 톨게이트를 코앞에 두고 버스는 도로 위에 두 시간 넘게 서있었다. 고속도로 차로가 정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아 크고 작은 차들이 여기저기 끼어들기를 시도 하면서, 기다림의 시간은 길어졌다. 길 위에 울려대는 각종 경적소리를 배경 삼아 나는 책을 읽고, 간간이 창밖으로 눈이 마주친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렇게 도착 예정시간이 한참 지난 뒤, 타지마할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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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아그라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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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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