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빈 Sep 27. 2019

#26.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아그라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아그라의 타지마할에 도착한 시각은 투어 예정 시간 보다 두 시간 여가 지난 후였다. 겨우 도착한 타지마할 입구엔 방금 전 고속 도로 톨게이트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입장 대기인원이 한 톨의 틈 없이 빼곡했다. 게다가 공해로 오염된 타지마할을 청소하는 기간이라 곳곳에 설치된 철골 구조물은 발길 옮길 때마다 시선을 덮쳤다. 여러 불행(?) 중 한 가지의 다행은 외국인 입장료를 지불한 덕에 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타지마할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타지마할의 외국인 입장료는 인도 국민의 10배인 1000루피(당시 환율 기준, 약 2만원)다. 여행객인 내 입장에선 비싼 요금을 지불한 건 아쉬웠지만, 붐비는 와중에 재빨리 입장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에 타지마할 안쪽부터 바깥까지 빙 둘러 싼 현지인들을 보고 있자니 타지마할에 대한 감탄보다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인도 사람들은 그들 옆을 쾌속으로 지나쳐가는 우릴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이들 중 누군가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진 않을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인도에서 적용 중인 외국인 할증이 장기적으론 서로에게 큰 득이 될 거 같진 않다.


인도 아그라의 궁전 형식 묘지 '타지마할(Taj Mahal)'


또한, 알다시피 타지마할은 굉장히 로맨틱한 연유로 지어진 곳이다. 타지마할은 인도 무굴 제국의 제 5대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이 출산 도중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뭄따지마할(Mumtaz Mahal)을 위해 만든 무덤이다. 뭄따지마할이 죽은 이듬해 1632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무려 22년이나 이어졌고, 그 결과 역사상 유래가 없는 화려한 무덤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기록에 의하면 공사비만 약 720억에, 20만 명의 인부가 동원됐다고 한다. 그 옛날 공사비로 쓰인 엄청난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시민들이 이어갔을 고된 일들과 공사에 직접 동원된 인부들의 희생을 생각하니 눈은 타지마할을 담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은 점점 아득해졌다. 인생이든 인간이 만든 역사든 모두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찰리 채플린의 말이 새삼 와 닿은 날이었다.
 

친구와 나는 타지마할을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고도, 줄을 서느라 우리보다 한참을 늦게 입장한 현지인들을 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모두가 모여 저녁 같은 점심 식사를 하고나니, 아그라는 이미 일몰 시간. 결국, 타지마할과 함께 투어 예정이었던 아그라성은 가지 못한 채 델리로 돌아갔다. 우리는 아그라성을 못가 본 아쉬움보단 무더위와 장시간의 이동에 지쳐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죽은 듯 잠이 들었다. 델리에 도착할 무렵, 잠이 깨선 내일 일정을 돌아보는데 문득 투어 비에 포함 돼있던 아그라성의 입장료는 환불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스쳤다. 맨 앞좌석에 앉아있던 가이드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어봤더니, 인도말로 뭐라 뭐라 운전사와 대화를 주고받고는(아마도, ‘이걸 지금이라도 줘 말아?’였겠지만!) 주머니 속 꼬깃꼬깃 구겨진 돈을 내게 건넸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매우 아쉬워하면서.


인도 아그라의 궁전 형식 묘지 '타지마할(Taj Mahal)'


그 돈은 다음 날 아침 로디 가든에 요가 수련을 갈 때 우버 요금으로 사용됐고, 그리고도 남은 잔돈은 수련 뒤 출출한 배를 달래줄 짜이와 간식거리를 사는 데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특히, 그 어떤 카페보다 호텔 앞거리에서 리어카 아저씨가 만들어준 10루피(약 200원)짜리 짜이가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짜이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렸더니, 친구들은 하나같이 인도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어도 되냐고 물어왔다. 뭐, 개인적으론 매우 괜찮았다. 나는 여행 기간 동안 짜이 외에도 레몬, 사탕수수 등의 착즙주스, 튀김 빵 등을 간식삼아 자주 사먹었는데 다행히 배탈 한번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중독적인 마법의 짜이를 만들어준 리어카 아저씨도, 이를 맛있다 말해주며 함께 즐기는 친구에게도 감사한 아침. 우리는 천천히 짐을 꾸리며, 바라나시로 갈 준비를 했다. 기차가 아닌 한 시간여의 항공 이동인지라 우버를 타고 공항에 잘 도착하면 된다 생각했다. 지금까지 무난한 여행을 한 것처럼, 별일이 생기겠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직 인도를, 인도인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의 순진무구한 생각. 인도는, 인도 현지인들의 말은 정말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

다음주에 바라나시 편이 이어집니다.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

구독 및 공감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제 일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프로필에 있는 인스타 계정으로 놀러 오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25. 힐링의 길로 인도해준 시간, 델리(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