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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Oct 04. 2019

#27. 태초를 살아보고 싶다면, 바라나시(1)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인도 뉴델리에 머문 지난 5일은 너무나도 별 일 없이 지냈다. 말 그대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며 건강한 나날들을 보냈다. (TMI지만, 난 이 세 가지만 충족되면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상보다 잘 터지는 유심 또한 여행의 질을 높이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바라나시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꼬였다. 우버 부터가 말썽이었다. 평소처럼 뉴델리 공항으로 목적지를 찍고 우버를 호출했는데, 웬 소형 합승 택시가 호텔 앞에 섰다. 말이 좋아 택시지, 트렁크도 없는 작은 차에 이미 승객도 한 명 타 있었다. 보는 순간, 과연 저 차가 나와 친구를 공항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수 있을지 망설여졌다. 타이어는 금세라도 터질 듯 마모되었고, 친구가 갖고 있는 고가의 카메라 장비들은 차의 천장에 매달고 가야할 판이었다.
 

결국,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다른 택시를 타겠다고 말하는 순간 이번엔 차 안에 있던 승객이 벌컥 나와선 우리에게 큰 소리로 불평하기 시작했다. 인도 현지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우릴 향한 사나운 눈과 드높은 목청을 놓고 보자면 그것은 ‘욕’이 분명했다. 기분은 나빴지만, 어찌됐든 망설이던 우리 때문에 그녀 또한 시간이 지체된 셈이라 딱히 뭐라 대꾸하긴 애매했다.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제 더 이상 호텔 앞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 다행히도 호텔 매니저가 밖으로 나오며 상황은 빠르게 일단락됐다. 소형 택시가 떠난 뒤, 우리는 매니저가 불러준 럭셔리 세단을 타고 공항으로 부랴부랴 향했다.


인도 바라나시의  'Shivala Ghat'


헌데 공항에 다 와서 또 문제가 생겼다. 델리 공항의 터미널은 두 개. 하지만 우리가 예약한 Jet Airway의 e-티켓엔 터미널 번호가 빠져있었다. 그간 잘만 터지던 인터넷도 이런 순간엔 왜 갑자기 느려지는지. 하하. 그 사이 기사님은 자신의 신념대로 제1 터미널로 직진했다. 불행히도, 터미널에 도착한 뒤 알게 된 사실은 Jet Airway는 제2 터미널에서 출발한다는 것. 우리에게 짜증 섞인 핀잔을 주는 기사님에게 나는 재빨리 “지금까지 나온 요금의 2배를 주겠다!”고 말했다. 이는 차의 꺼진 시동을 부활시킨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렇게 마감 시간을 5분 남겨놓고, 체크인에 가까스로 성공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 바라나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나오자마자 우리들 옆에 찰싹 붙는 여러 기사님들을 따돌리며, 예약한 우버에 안착했다. 숙소로 가는 길, 델리 도심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들이 펼쳐졌다. 창밖으로 멍하니 이를 바라보는데, 숙소까지 30분 여 남은 지점부터 차는 옴짝달싹 못하기 시작했다. 나바라트리 축제 행사로 바라나시 메인가트로 가는 도로 곳곳이 폐쇄되어, 숙소를 코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택시는 우회하며 골목골목을 누볐지만 그곳도 꽉 막히긴 마찬가지.


인도 바라나시의  'Shivala Ghat'


기사님은 그때부터 차가 잠시 움직이면 현지의 시끌벅적한 음악을 크게 틀고 신나게 달렸고, 차가 멈춰서면 음악을 끄고 뒤돌아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 물론, 영어가 아닌 현지어로! 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나로서는 혹여 이대로 우리를 길바닥에 버리고 가면 어쩌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찌저찌 숙소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 경. 공항에서 숙소까지 무려 3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이는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이동한 시간의 2배가 넘는 시간이기도 했다. 차안에 갇혀 있는 3시간 동안 나와 친구는 그 많던 웃음이 실종되었고, 그야말로 멘탈붕괴 상태에 다 달았다.
 

그렇게 트렁크 속 짐을 천천히 꺼내 들며 택시비를 지불하려는데, 이번엔 가방 속에 있어야 할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늘 어깨에 메고 다닌 캔버스 백 보조 주머니 안에도, 내 키만 한 백 팩의 저 깊숙한 곳까지 뒤져봐도 지갑은 나올 생각이 없었다. 곡할 노릇이었다. 택시 기사님은 자신이 가져간 게 아니라며 재빨리 제스처로 피력했고, 친구는 내가 짐을 꺼내다 지갑을 땅에 떨어뜨렸나 싶어 골목 바닥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해선 짐을 뒤적이던 그때, “relax, calm down."을 반복해 말하며 나의 어깨를 토닥여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내가 예약한 바라나시의 숙소, 아씨가트에 위치한 요가 아쉬람의 주인장 할아버지가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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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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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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