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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Oct 11. 2019

#28. 태초를 살아보고 싶다면, 바라나시(2)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가로등 하나 없어 이미 컴컴한 바라나시 골목 안. 일단 주인장 할아버지의 말 따라 짐을 챙겨 아쉬람 안으로 들어갔다. 아쉬람은 4층 건물로 널찍한 중정이 돋보였고, 출입구 건너편 쪽엔 아씨 가트로 바로 나갈 수 있는 또 다른 문도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갠지스 강의 풍광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천장에 달린 주황 불빛에 의지하며 옷가지와 세면도구, 노트북, 책 등 짐을 몽땅 다 꺼내기 시작했다. 배낭을 뒤집어 탈탈 털어 봤지만 지갑은 나올 생각이 없었다.
 

그때, 배낭을 고정시키는 허리끈에 문득 시선이 갔다. 그 끈에 달려있는 작은 보조 지퍼가. 출발 전, 가트 앞에서 정신없이 사람들에게 치이다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그 속에 지갑을 넣어놨었다. 누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3시간 동안 나를 택시 안에 가둔 원흉(?), 나바라트리 축제를 원망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잠시 집을 나간 나의 혼을 어떻게든 되찾아오고 싶었지만, 이미 심신이 탈탈 털린 상태였기에 그 혼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숙소에서 먹은 첫끼 인도식 백반 '탈리(thali)'


일단, 해야 할 일은 마치자 싶어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나와 친구를 길바닥에 버리지 않고 이곳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 기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팁을 포함해 넉넉히 돈을 건넸다. 다행히 아저씨는 미소와 함께 떠났다. 그리곤 다시 숙소로 들어와 체크인을 마쳤다. 2층에 위치한 방을 안내 받고, 짐을 내려놓자 친구는 그저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리곤 이내 픽 웃었다. 빙 둘러본 방 안은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우리 내 7, 80년대 아날로그적 분위기가 물씬 났다.
 

하늘색 페인트가 투박하게 칠해진 벽이 사방을 둘러싼 작은 방 안엔 아씨가트가 내다보이는 작은 창이 나있고, 그 창 아래엔 붙박이식으로 낡은 라지에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방에 딸려있는 화장실엔 왼쪽 구석에 작은 양변기가, 그 코앞엔 낡은 수도꼭지와 바가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설마 싶어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어 봤는데, 다행히도 조금 기다리니 온수는 나왔다. 한 시간 반이면 가능할 줄 알았던 도시 간 이동이 꼬박 하루가 걸리며, 나와 친구는 긴 대화를 나눌 새 없이 지쳐 잠이 들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갠지스 강(Ganges R)'


다음 날, 내가 깬 시각은 오전 6시 경. 옆에서 곤히 자는 친구를 두고, 나는 조용히 요가 복으로 환복한 뒤 밖으로 나왔다. 내가 묶은 숙소는 요가 아쉬람으로, 매일 새벽에 요가 수업이 진행되는 곳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2층 중앙에 위치한 넓은 야외 홀은 정면에 갠지스 강이 내다보여 요가 수련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어젯밤 혼비백산 상태의 나에게 “relax. calm down,"을 반복해 말하던 할아버지는 이 아쉬람의 주인장으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고, 1층에 마련된 제단 앞에 앉아 정성스레 기도를 드렸다. 만삭의 배(?)를 갖고 계셨음에도, 핸드스탠드 정도는 새가 날아오르듯 가뿐하게 하시는 분이었다.
 

매트를 깔고 자리에 앉자마자 할아버지는 내게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를 할 수 있냐?”고 물으셨다. 시작부터 머리서기라니. 대답 대신, 매트 앞에서 손깍지를 꽉 쥐고 정수리를 고정시킨 뒤, 천천히 다리를 들어올렸다. 올라감은 잠시, 금세 몸이 휘청거렸다. 지난 밤 소동으로 고단한 몸과 어지러운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터. 마침 그때, 오리엔탈 느낌을 물씬 풍기는 여자 아이 한 명이 다가와 내 옆에 매트를 깔았다. 그렇게 나와 그 아이는 할아버지의 주문에 따라 스탠딩, 싯팅, 마무리 자세 그리고 프라나야마(호흡)로 이어지는 요가 수련을 이어갔다.
 

옆에서 들려오는 안정된 호흡 소리는 이 아이 또한 요가 수련을 오랜 시간했음을 짐작케 했다. 사바아사나(송장자세)까지 마친 뒤에야 마주 보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Michelle Song. 코리안이라는 내 말에, 자신 또한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며 한국 이름은 ‘진아’라고 소개했다. 자신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으며, 마이솔에 수련을 가기 전 잠시 여행 차 바라나시에 들린 거란다. 이곳 바라나시에서, 한국어는 전혀 못해도 뉘앙스는 용케 알아듣는 아쉬탕기를 만나다니. 게다가 초등학교 까진 연희동에 위치한 외국인 학교에 다녔단다. 마포구에서 태어나 쭉 자란 나는 그녀가 더욱 반가웠다. 그렇게 진아는 자연스레 나와 친구의 바라나시 여행 메이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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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에 3편이 이어집니다.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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