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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Oct 18. 2019

#29. 태초를 살아보고 싶다면, 바라나시(3)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요가 수업이 끝난 뒤, 진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바라나시에 머무는 동안 함께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매트를 깔고 앉아있는 바로 이곳, 갠지스 강이 내다보이는 요가 아쉬람의 2층 야외 홀에서. 바라나시 골목골목엔 요가원이 꽤 많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워낙 많은 여행객들이 오가는 곳인지라 요가 수련실의 분위기 또한 고요하기 보단 붕 뜬 느낌이었다. 그녀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며,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기분 좋게 방으로 들어서는데, 배꼽 아래에서 뜨겁고 묵직한 무엇인가가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결국, 시작되었구나! 재빨리 화장실에 들어가 확인 사살(?)을 한 뒤, 자고 있는 친구를 다급히 흔들어 깨웠다.


인도 바라나시에서 만난 내 친구 '진아'


“너 생리대 있어?”
“아니. 근데, 너 약 먹었잖아?”
 

그렇다. 생리 주기가 일정한 편인 나는 인도 여행길에 오르기 전 생애 처음으로 피임약을 먹었다. 다른 곳도 아닌 무려 ‘인도’였기에 자연을 거스른 선택을 했다. 떠나오기 전, 불안해하는 내게 다들 이렇게 말했었다. 처음이면 약발을 잘 받을 테니, 절대 걱정 말라고. 하하. 근데, 시차까지 정확히 계산해 먹은 약의 효능은 생리 예정 당일 무참히 깨졌다. 이놈의 머시론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분한 마음에 쓰레기통에 약을 통째로 버린 뒤, 마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꽤 멀리 떨어진 곳에 한 곳이 있었고, 우버를 불러야만 했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오픈 시간까지 세 시간여를 더 기다려야했다.
 

이미 생리가 시작된 마당에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급한 마음에 골목길에서 본 작은 키오스크를 가보기로 했다. 그곳엔 다행히도 생리대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포장된 위스퍼가. 물론, 포장지 위엔 뽀얀 먼지가 얹어있었지만,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람! 주인에게 건네받은 검은 봉지를 달랑이며 발걸음 가볍게 숙소로 돌아와 인도 산 생리대와 첫 대면 식을 가졌다. 끈적임의 강도가 한국산보다 세긴 했지만, 이거라도 있어 너무도 다행이란 생각뿐이었다.
 

부풀어 오른 아랫배를 만질 때면 문득 문득 억울하단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미 터진 일. 더 이상 이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론은 내 몸은 약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건강하고, 요가는 순환에 매우 좋으며, 머시론은 거지같은 약발을 지녔다는 것이다. 어쨌든 지난 밤 택시 테러가 채 가시기 전인지라 몸은 그대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지난 밤 친구도 오늘은 휴식을 취할 거라며 선언했던 상태였기에, 함께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어느새 배는 또 고파서 구글로 음식점을 검색하는데, 아씨 가트 변에 화덕 피자를 먹을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었다.


갠지스 강에서 바라본 '다사시와메드 가트(Dashashwamedh Ghat)'


숙소에서 도보 8분 거리. 우리는 천천히 일어나 식당으로 이동했다. 가트 변에 앉아 먹은 크림 파스타와 마르게리따 피자는 천국의 맛이었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 올라간 애플 파이는 축 가라 앉아있던 기분을 달뜨게 했다. 배불리 먹고 난 뒤엔, 가트 주변을 거닐다 골목 상점에서 가네쉬가 수놓아진 롱 원피스와 자색으로 큼지막하게 옴(ॐ)이 찍혀있는 요가 매트 커버를 구입했다. 둘 다 인도 물가에 비해 다소 비싼 가격이긴 했지만, 구매 대금의 일부가 이곳 바라나시에서 자라는 어린 학생들의 교육비용에 쓰인다는 말에 흥정은 생략했다.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늘 갖고 살자. 잠시라도 다 같이 웃을 수 있다면, 내가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 일몰 무렵, 갠지스 강에 둥둥 떠 있는 배 위에 앉아 생각했다. 그렇게 배는 천천히 힌두 뿌자 의식이 진행되는 메인 가트 주변으로 다가갔다. (*힌두 뿌자 의식은 힌두교에서 창조와 파괴를 의미하는 쉬바 신에게 매일 바치는 제사로, 매일 밤 갠지스 강의 메인 가트에서 행해진다.) 여러 겹으로 싸인 보트 사이에 앉아 있으니, 주변이 산란 해 시야에 뿌자 의식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자연스레 시선이 돌아갔고, 그 시선 끝엔 우리가 탄 보트를 고정하기 위해 직접 강에 들어가 배를 잡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와 길게 눈이 마주치던 순간, 화장터를 지날 때도 안 나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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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에 4편이 이어집니다.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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