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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Oct 25. 2019

#30. 태초를 살아보고 싶다면, 바라나시(4)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인도 영화 중에 슈브하시슈 부티아니 감독의 <바라나시>가 있다. 영화는 77세 다야 할아버지가 꿈을 꾸고, 가족들에게 “바라나시로 떠나겠다!”고 선언하며 시작된다. 다야는 본인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해 바라나시에 가기로 결정한 것이지만, 아들 라지브는 꿈 하나로 갑작스레 떠난다는 아버지가 영 못마땅하다. 끝내 아버지를 혼자 보낼 순 없어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함께 바라나시로 떠나는 아들. 그렇게 부자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생의 마지막을 바라나시에서 보내면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인도인들. 이 영화는 그들의 삶과 죽음에 바라나시가, 바라나시를 가로지르는 갠지스 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도시에서만 살던 내가 태초의 자연과 같은 삶이 펼쳐진 바라나시에 도착해 적응을 하기까진 수 일이 걸렸다. 불편하고, 더럽고, 냄새난다는 생각이 지나고, 이들의 삶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바라나시가 비로소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엔 늘 ‘샨티(shanti, 평화)’가 있었다. 하지만 뿌자 의식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갠지스 강 위에 떠 있을 땐 그 반대의 감정이 교차했다. 이 배 저 배를 위험천만하게 뛰어 다니며 디아(꽃이 장식된 초)를 파는 어린 소녀들과 보트를 고정하기 위해 강에 들어가 있는 남자들을 봤을 때. 그 중 한 사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왔던 건, 그간 내가 이곳에서 지내며 느꼈던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감정의 표식이었다.


갠지스 강에 띄우며 소원을 비는 꽃초 '디아(Dia)'


바라나시에 일주일 간 머물며 나는 나의 부모에게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건강하게 자신을 돌보며 성실하게 일하신 덕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경험하며 지낼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물려주신 특유 밝은 웃음 또한 잃지 않은 성인이 되었다. 어디서 태어나는 가는 운명의 문제인지라 누굴 탓할 순 없지만, 적어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내 삶을 지향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된 건 이곳 바라나시 덕분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 나는 산책 겸 아씨가트에서 매일 아침 진행되는 명상 요가에 참여했다. 꽤나 많은 현지인들이 준비된 방석에 앉아 다양한 호흡과 움직임, 그리고 웃음 요가를 이어갔다. 크게 박수치며 함께 웃은 그 시간 덕에 나 또한 지난밤의 슬픔을 조금 덜어 낼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갓 구운 초콜릿 팬케이크와 튤시 짜이 한 잔을 마시곤 잠시 낮잠을 잤다. 단잠 뒤엔 진아와 함께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하고, 이후 친구도 합류해 팔라펠 요리를 먹으러 갔다. 갓 튀긴 팔라펠을 반으로 쪼개 입에 넣고 오물오물 거리니, 친구가 엄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곤 근처 힌두 사원에 들렀다. 딱히 무엇을 바랄 건 없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이러한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할 뿐이었다. 해질녘, 돌아온 숙소는 역시나 전기가 또 나가 있었지만 어둠 덕에 노오란 보름달이 훤히 내다 보였다. 나는 중정 한 편에 앉아 멍하니 달빛이 그린 갠지스 강을 한참 바라봤다. 좋아하는 일로만 꽉 찬 하루, 여행이었다.


인도 바라나시 '보트 왈라와 일출'


어느덧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숙소에 미리 예약해둔 일출 보트에 올랐다. 짙게 낀 물안개가 갠지스 강을 좀 더 몽환적으로 만들었고, 나는 그 환상 속에서 떠오르는 해와 지는 달을 보았다. 넋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때, 보트 왈라가 내게 물었다. “Did you eat peace in Varanasi?" 나는 그 질문에 망설임 없이 ”Yes"라 답했고, 그의 질문이 이곳 바라나시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도 마이솔 수련을 떠나게 되는 언제가 바라나시에 한 번 더 오겠다고 다짐했다.
 

짐을 한창 싸는데, 진아가 방으로 찾아왔다. 지난 밤, 가트 앞 서점에서 끝내 사지 못한 책. 구루지 파타비 조이스가 쓴 <Yoga Mala>를 들고서. 자신은 이미 여러 번 읽었다며, 우리가 아쉬탕기로서 인도 마이솔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는 인사와 함께였다. 이를 보던 아쉬람 주인 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느새 'didi(दीदी, 자매)‘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바라나시에선 어떤 일을 바라지 않아도 더 없이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건 분명 그 시간을 함께해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들에게 두 손 모아 감사한다.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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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에 캐나다 몬트리올(1)편이 이어집니다.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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