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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Nov 29. 2019

#36. 여행은 일상처럼, 뉴욕(1)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을 내내 뉴욕에서 보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당시, 한국에선 통이 큰 옥스퍼드 셔츠와 면바지가 유행했고, 그 덕에 나는 통통한 몸을 용케 잘 숨기고 다녔다. 여행을 함께한 나의 남동생 또한 마찬가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누나, 여기서 우리가 제일 날씬한데?”라며, 씩 웃던 동생이 기억에 선하다. 그리고 낯선 인종들만큼이나 코를 곧바로 저격한 찌르르한 냄새까지. 아빠의 사업 파트너 덕에,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어딘가를 갈 때는 차를 편히 타고 가장 좋은 곳에 가서 보고, 먹고, 잤다. 내 튼튼한 두 다리로 동네 작은 상점 한 번을 혼자 들어가 보지 않았다. 아니, 가 볼 생각조차 못했다. 어른들의 손을 벗어나기엔 어린 나이였고, 현지인들을 상대하기엔 영어실력도 형편없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늘 마음 한편으로 뉴욕이 그립고 아쉬웠다. 어른들의 보살핌아래 좋은 것만 보고, 먹던 그 시간 동안 분명 얻은 것도 있지만, 어쩌면 잃은 게 더 많을 수도 있단 걸 성인이 되어 알게 되었다. 그 마음 때문인지 다시 찾은 뉴욕에선 욕심이 났다. 좀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알고 싶었다. 나를 그 옛날 이곳에 보내준 엄마와 함께이기도 했으니까. 그 마음이, 욕심이 넘쳐 무리가 오지 않을지 다소 걱정도 된 여행의 시작. 첫날은 긴 비행을 감안해 숙소에 무사 안착하자는 계획만 세웠다. 그렇게 미리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맨하탄으로 향했다.


미국 뉴욕의 숙소 '마음이 쉬어간 자리'


고심 끝에 내가 택한 숙소는 맨하탄의 중심부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 뉴욕 시내가 훤히 내다보이는 실내 뷰는 물론이거니와 아파트 옥상에 헬스장, 휴게실, 루프 탑이 갖춰져 시끌벅적한 뉴욕에서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 곳이었다. 상식선을 벗어난(?) 뉴욕의 어마 무시한 호텔에 비하면 비용도 합리적인 편에 속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수준에 비해 매우 비쌌다!) 당연히 뉴저지나 브룩클린, 퀸즈 등 외곽으로 빠지면 숙박비용을 좀 더 아낄 수야 있지만, 나는 좀 더 비용을 쓰더라도 여행지에선 내 시간 확보가 중요하다 주의다. 이는 나의 여행 패턴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20대 내내, 학원 강사와 과외 알바를 통해 모은 돈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 안팎의 시간 동안 나란 사람의 취향 또한 확고해졌는데, 그렇게 자리 잡은 나의 여행 방식은 이상하리만큼 한국에서의 생활과 닮았다. 새벽에 일어나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졸리면 단잠을 취한다. 이후, 관광을 나갔다 다시금 카페 혹은 숙소에 들러 책을 읽거나 쉬다 해질 무렵 다시금 요가원을 찾는다. (내 경우 관광은 하루 한 곳이면 충분하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자주 접하지 못한 다양한 스타일의 요가 수련을 이어간다. 그리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마무리 되는 하루.


미국 뉴욕에서 맛본 '맨하탄 해피밀'


전반적으로 숙소에 머무는 시간이 보통의 여행자들보다 길기에, 숙소는 요가원이 가까운 곳 혹은 이동이 편한 센터에 잡는 게 편하다. 결과적으로 글을 쓰는 일과를 관광으로 대체하고 나면 크게 다를 바 없는데, 왜 여행을 그리도 길게 떠나느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이러하다. 나를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는 곳,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는 곳에 잠시나마 편입되어 그들의 삶을 관찰하는 게 참 좋다.



뉴욕은 그에 딱 떨어지는 곳이었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지만 그 언어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며,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듯 엄청나게 다양한 인종들이 내 눈앞을 지난다. 시야 주변은 전부 크고, 높으며, 꽤 화려하다! 세계에서 가장 변화에 민감한 곳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요가 수련 또한 일찍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나는 요가원에서 수십 년간 요가 수련을 이어간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들의 온화한 에너지를 느끼며 함께 호흡한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 수련자가 여행을 다니며 누리는 장점 중 하나는 전 세계 어딜 가나 아쉬탕기라면 같은 만트라로 시작해 동작과 호흡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성별, 인종, 생김새, 모국어 등 외부에서 우리를 분류하는 기준이 분명 다를지라도, 이 요가 수련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세계 어딜 가나 수련실은 늘 온화한 에너지로 꽉 차있다. 그 덕에 평소라면 질색 할 누군가의 땀 냄새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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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에 뉴욕(2)편이 이어집니다.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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