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빈 Jan 24. 2020

#42. 대강이 기회가 되는 순간

Chapter3. 얼렁뚱땅, 요가 강사

요가 지도자 과정 중 원장님은 요가 대강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대강 강사가 수업을 잘 하는 것도 기존 강사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다고. 돌아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낸 이야기라 생각된다. 수업에 부담을 느끼는 교육생들에게 요가 대강 수업은 일회성으로 큰 부담 없이 연습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혹여 긴장해서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수업했다면 그 도전에 의의를 둘 수 있다. 다만, 대강 강사가 기존 강사보다 수업을 잘했을 경우. 특히, 회원들의 입김이 센 센터는 기존 강사가 대강 강사에게 자리를 뺏기는 경우도 이따금씩 발생한다. 그러니 대강 수업을 단순 일회성이라 생각하고 무작정 덤비진 마시라.
 

내 경우는 아파트 커뮤니티 강사직이 확정된 뒤, 실제 수업을 시작하기까지 한 달 가까이의 시간이 떠 있었다. 그 동안 수업 연습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 집 앞 헬스장에 대강 공고가 났다. 간략한 이력과 함께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 확정되어, 며칠 뒤 대강 수업을 나갈 수 있었다. 사실상 나의 첫 요가 수업이었다. 금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수련실 안엔 15명 남짓의 분들이 모였다. 나이대도 4050대. 예상외로 꽤 높아 혹여 내가 짜 놓은 시퀀스를 어려워하시면 어쩌지 긴장되기 시작했다. 간략한 소개를 마친 뒤 매트 앞에 서선 ‘실수하지 말자, 아니 실수하더라도 당황하지 말자’며, 마음속으로 다짐 또 다짐했다.


아르다 하누만아사나(Ardha Hanumanasana)를 연습 중인 회원님들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세 번의 옴 만트라. 분명 다 함께 하자고 했는데, 그분들에겐 꽤나 낯선 방식이었는지 결국 나 홀로 외쳤다. 당황도 잠시, 본격적으로 아사나 수련에 들어가니 다들 집중하며 열심히 동작을 이어갔다. 동작을 마친 뒤 사바아사나 중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어찌나 뿌듯하던지. 기분에 취해선 그 많은 이들의 어깨를 한 번씩 꾹 눌러 드렸다. 시원하다며 기분 좋게 미소 짓는 분들을 보며, 진정 요가 강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날 이후 일반 수업에선 마사지를 절대 하지 않는다. 왜냐면, 저 많은 이들을 온 힘 다해 눌러주기엔 내가 너무 힘드니까!)
 

매트를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선생님, 계속 수업에 나오시면 안 돼요?”라며 나를 붙잡았다. 머쓱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헬스장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재 그 수업이 공석이라 원한다면 계속해서 수업을 진행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달 시작될 아파트 수업과 시간이 살짝 맞물려 계속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파트 수업이 시작되기 전 3번의 대강 수업을 추가로 진행했다. 그 시간동안 대강 수업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일단 장점은 3.3% 소득 공제를 하지 않고, 수업 직후 수업료가 입금된다는 점이다. (이는 경우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니, 확인 필수!)


아르다 하누만아사나(Ardha Hanumanasana)를 연습 중인 회원님들


하지만 명확한 단점도 존재한다. 내가 일회성으로 그들 앞에 선 만큼 그분들에게 나 또한 다시 볼 일 없는 일회성 강사다. 그 때문에 그들 뇌에 있는 생각이 그대로 날선 말로 튀어나와 나를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대강 수업 날, 마리챠아사나A를 마친 뒤 B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B가 힘든 분들은 A를 한 번 더 연습해보라 안내하는데, 갑자기 내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했던 걸, 왜 또 해?”라며, 불평했다. “그럼 아주머니는 방금 숨 쉬고, 왜 또 숨을 쉬나요?”라고 짓궂게 되묻고 싶었지만, 못 들은 척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이어갔다. 그저 떠날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대강 수업. 한 달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헬스장 팀장이었다. 수업 시간을 기존보다 30분 당겨줄 테니, 수업을 다시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아파트 수업을 가는 길이니 돈이나 더 벌자는 마음에 냉큼 그 제안을 받았고, 지금까지 수업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나에게 약간의 상처를 준 그 아주머니 또한 이따금씩 뵙는다. 다행인 건, 내 수업을 좋아하는 분들이 더 많다는 것. 그분들이 나를 찾아주어 이런 기회가 내게 왔다는 것. 덕분에 금요일 밤을 매우 알차게 마무리 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

구독 및 공감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제 일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프로필에 있는 인스타 계정으로 놀러 오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41. 냉온탕을 오간 구직 활동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