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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기 Jun 09. 2016

『채식주의자』를 읽는데 참고가 될 몇 가지 사항들

아직 채식주의자를 읽지 못한 분들께

지난달 16일 저녁,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세계적인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이에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한국문학이 심폐소생술을 한 것처럼 다시금 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바쁜 일정 속에 아직 이 책을 읽어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책을 집는데 참고가 될 만한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봤다.



1. 맨부커 인터네셔널상

한강이 받은 상은 엄밀히 말하면 맨부커상이 아닌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이다.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은 노벨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상이다. 1969년부터 매년 영국, 아일랜드 등 연방국가 내에서 영어로 쓴 소설 중에서 수상작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5만 파운드(한화 8천4백만 원)이다.


한강이 이번에 수상한 상은 맨부커상의 자매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이다. 이 상은 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간된 문학 책의 ‘작가’와 ‘번역가’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한강과 함께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Deborah Smith)가 공동 수상하였다. 그만큼 이 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는 '원작자'만큼 '번역자'가 중요하다.


The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올해부터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은 ‘인디펜던트 외국 소설상’과 통합되었으며 과거에 번역 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심사했던 것을 작가의 '한 작품'에 수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선정된 작품이 『채식주의자』이다. 기존에 한강의 작품 중 영어로 번역된 것이 거의 없지만 한 권의 책을 번역하더라도 제대로 된 번역을 내놓을 수 있던 것이 이번 수상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 아닌가 싶다.


맨부커상의 선정위원 다섯 명은 만장일치로 『채식주의자』를 선정하였다. 선정위원회 주심을 맡은 영국의 문학평론가 보이드 톤킨은 “서정적이면서도 가슴 찢는 스타일로 (극단적인 채식주의라는) 엄청난 거부가 여성 주인공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가한 충격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서구 사람들에게도 친근한 채식주의자라는 소재를 한강 특유의 문필로 재해석해낸 것이 공감을 불러일으킨 듯 하다.


한국 작가가 이 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아시아 작가 중에서도 처음이라고 한다. 맨부커 인터네셔널 상은 2년에 한번씩 수여되니 당분간은 한강이 유일하겠다.


수상식 영상


이처럼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는 작가, 번역가, 작품의 삼위일체가 중요하다. 다만 맨부커상이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인 것은 맞으나, 언론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분류하는 것은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정서에서 비롯된 것 이라며 의견이 분분하다.


참고로 올해 맨부커상은 현재 심사작을 선정 중이며 10월 25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작년 수상자는 A Brief History of Seven Killings의 저자이자 자메이카 출신인 Marlon James이다.





2. 연작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3부로 구성된 연작 작품이다.


이 세 작품이 발표된 시점은 각기 다르며 2007년에 이 세 작품을 모아 단일권으로서 『채식주의자』를 발간하였다. 2007년에 발간된 이 책은 9년이 흘러 그녀에게 새로운 영광을 안겨다 주었다.


채식주의자 - 창작과비평 2004년 여름호
몽고반점 - 문학과사회 2004년 가을호
나무불꽃 - 문학 판 2005년 겨울호


각 작품은 극단적 채식주의에 빠진 한 여성의 모습을 주변 인물 세 사람의 시점에서 각각 그린다. 이 세 이야기는 이어지며 동시에 조금씩 상이한 주제를 다룬다. 이 3부작이 모였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한강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알게 될 수 있다.


한강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군대에 있을 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몽고반점을 통해서였다. 그 때는 이게 연작인 줄 모르고 성에 대한 고정된 시각과 예술혼에 대한 열망 정도로만 읽었었다(어린 마음에 책이 굉장히 야하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후에 이 연작을 순서대로 읽자 그 연결성에 크게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이어지는 세 작품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는 폭력성을 하나씩 짚어낸다.




3. 채식주의자를 쓰게 된 계기

그녀는 어떻게 이 책을 쓰기 시작하였을까?


『채식주의자』는 작가의 어떠한 경험이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채식주의자를 쓰기 4년여 전의 겨울, 그녀는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불현듯 그 꿈들의 끔찍함은 다름 아닌 삶의 피비릿내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녀가 쓰기 시작한 것이 『채식주의자』이다.


그녀의 소설 중 첫번째로 만들어진 영화


사실 그녀는 채식주의자를 집필하기 수년전에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소설을 썼었다.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그 변주를 쓰고 싶었다고 책의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말한 바 있다.


한강은 꽤 오랫동안 채식주의에 골몰했었던 듯 하다. 그녀도 채식주의자일까? 책의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길...



4. 작가 한강과 그녀의 아버지

한강은 광주 출생으로 서울로 올라와 연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그녀는 출판사에서 일을 하다가 소설가가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유명한 소설가 ‘한승원’이다. 그녀의 아버지 또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한승원-1988년, 한강-2005년). 그녀의 오빠 한동림도 신춘문예로 등단한 바 있다.


만해문학상 시상 뒤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 한강


작가는 어릴적 아버지를 통해 들은 광주의 이야기들이 본인이 작가가 되는데 많이 영향을 끼쳤음을 여러번 말한 바 있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인터뷰한 그녀의 말들을 보면 작가의 유년시절과 내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5. 아마존닷컴

현재 『채식주의자』는 현재 영국 아마존 닷컴에서 독자 평점 5점 만점에 3.7점이다. 5월에는 아마존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도 들었으나 지금은 233위에 있다(6월 8일 기준). 미국 아마존닷컴에서는 Best Books of the Month에도 선정되었다. 댓글을 보면 ‘환상적이다’, ‘탐미적이다’, ‘독특하다’등 다양한 감탄사들이 쓰이고 있다.


amazon.co.uk


한국에서는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한국출판인회의).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 『흰』 또한 상위권에 있다.


『채식주의자』는 프랑스, 스페인 및 아랍권 등 27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맨부커상 수상 이후로 해외에서도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한강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주문도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번을 계기로 한국의 작가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며 정유정, 배수아, 황선미 등도 더불어 주목받고 있다.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그랬던가? 한국의 작품을 번역하는 것은 수십년전에 존재했던 카뮈를 발견하는 것과 비슷 하다고.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221p 중


이 책은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 껴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소설이다. 우리는 '영혜'처럼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나면 우리는 어떠한 의미에서 '채식주의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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