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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마발달요가 은희 Jun 09. 2021

아이들과 놀다보니 허리가 나았다.

두 번째 기록.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날은 딱히 기억날 것도 없는 아주 보통날 중 하나였습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날 새벽녘 화장실을 가려고 몸을 일으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얼마나 심각한 충격이었는지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때 저의 움직임, 통증, 앉은 모양, 공기, 어스름한 밝기, 남편의 인기척까지도

선명하게 떠올릴 정도입니다.


그날부터는 정상적으로 걷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병신춤을 추는 무용수 혹은 노트르담의 꼽추처럼 허리를 펴는 동작을 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남편의 도움 없이는 용변을 보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릅니다.


무용을 하면서 동료들의 아픈 모습을 참 많이도 보았습니다.

발목, 허리, 목 어깨, 고관절 부상 등 무용수에게 부상이란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무용을 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습니다.

부상을 당한 적도, 염증과 같은 질병이 생긴 적도 없었거니와

그때와 같은 허리 통증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렇게 고된 무용을 하지도 않는데 통증이라니!

그것도 이렇게나 꼴사나운 모습으로.


한번 몸을 일으키려면 굉장히 많은 땀이 났습니다.

구부 정한채로 걷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었고,

'일어서야겠다'는 의지는 온몸이 땀범벅이 될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급성 허리 통증은 종종 이어졌고 그때마다 온 가족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거나 약물치료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허리 통증을 겪은 엄마의 조언에 따라,

'우리 집안의 유전' 정도로 생각하며 물리치료와 침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몸의 능력이라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습니다.

신기하게도 2-3주 정도의 치료를 병행하고 나면 다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직립한 저의 허리는 '조심해야 할 대상' 이 되었습니다.

안 아프고 사는 것이 제일이다.

엄마는 제게 이제 무용이나 요가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몸을 너무 혹사시켜서 아픈 것이라고 말이죠.

저는 동료들의 부상을 보아왔기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면서도 완벽히 납득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용과 요가를 계속할 때는 아프지 않았으니까요.


'왜 그럴까?'


이런 의문을 확인해볼 새도 없이 저는 육아에 매진하게 됩니다.

그 무렵 아이가 둘이 되었고,

저는 또 허리 통증과 마주합니다.

마찬가지로 극심한 통증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던 저는 계속해서 육아를 해야만 했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부모님 댁은 멀었으며, 남편은 당직 근무가 잦은 편이라

혈혈단신 남편 직장 따라 간 동네에서 한 아이는 아기띠로 안고, 한 아이는 유모차로 밀며

이리저리 다니는 아이들을 쫓아 부지런히 도 다녔습니다.

제발 허리야 빨리 나아라,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육아는 허리 통증을 완화시켰습니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보다 보면 허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전의 통증보다 훨씬 빨리 회복하게 된 것이죠.


타지에,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이렇다 할 치료도 받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하루 종일 허리에 신경 쓸 새도 없이 바빴던 몸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양하게 움직이는 것이 몸을 안 아프게 한다.'

이것이 그때 제 뇌가 내린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다양하게 움직였고 오랫동안 움직이는 일을 한 내가

'왜 아프게 된 것일까?'


저는 처음 왜라는 물음 앞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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