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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신 Jul 27. 2021

철학을 향한 철학적 사유

스스로에 대하여






항상 ‘철학’이라는 단어에 적지 않은 무게감을 느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철학이라는 말을 쉽게 입에 오르내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철학이란 왠지 모르게 다독하고, 사유를 즐기며, 고뇌하는 이들의 유산이라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건 아마도 역사적인 철학자들에 대한 단편적인 일화들이 만든 착시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철학적 사유로 채워 온 소크라테스는 젊은 이들의 마음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했고, 데카르트는 제1원칙이라는 논리적 법칙을 만들어 이 세상을 이성으로 해석하려 했으며, 니체의 철학적 사유는 홀로코스트의 명분으로 악용되었다. 이 무겁고 비극적인 이야기엔 늘 철학이 중심에 있었고, 그들 또한 위대한 인물로 기록되었으니 우리같이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철학이 다소 높은 장벽으로 다가오는 건 그다지 어색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무식해서 용감했던 나는 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벽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나는 철학이 그다지 거창한 의미가 아님을 깨달았다. 고대 철학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의 철학의 시대를 시음한 경험 덕만은 아닐 것이다. 이에 관련한 수업을 듣고, 책을 읽어가며 지식을 쌓은 바는 있지만 사실 내가 철학을 가볍게 생각한 가장 중요한 계기는 철학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알게 된 이후다.


철학 philosophy. 그리스어의 philo는 사랑을 뜻하고, sophy는 지혜를 뜻한다. 즉,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럼 지혜란 무엇이냐라는 지루한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철학 수업시간에 토론을 할 때면 항상 이런 식으로 반문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무한의 ‘왜’를 외치며 노력 없이 사유의 질료를 추궁하는 이들. 대부분 이런 질문의 저의는 본질에 대한 탐구적인 자세보단 힘들이지 않고 상대의 논리를 무너뜨리려는 오만에 있었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건 지혜가 아닌 사랑이다. 결국 철학은 사랑을 토대로 한다.


우린 누구나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대상이 무엇이 되었건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비슷한 향을 머금고 있다. 결국 사랑은 행복을,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가치이다. 사랑 없는 삶은 목마를 수밖에 없고, 사랑 없는 나날은 늘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다. 우린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사랑이 결국 철학의 모태이며, 우린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해 나아감으로써 남모르게 철학을 알아가게 된다. 그래, 본인의 삶을 사랑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오만가지의 감정과 사유 모두가 철학의 일환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 또한 분명히 철학적 사유를 하는 사람이다. 철학은 그만큼이나 평범하다.


그래서 오늘 밤 잠들기 전 나의 하루를 돌이켜 보고, 내일의 나를 그려보는 일 또한 분명 가치 있는 철학적 사유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철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사유와 고민이 철학적 토론을 한답치고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이 무엇이냐’라는 탁상공론보다 훨씬 더 섹시하고, 깊이 있다고 생각한다. 갑론을박은 그저 서로를 헐뜯고, 상대의 논리의 빈틈을 찾기 위한 경쟁에 불과하다. 만약 그러한 성취를 통해 본인에 대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철학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여기서 더하고 싶은 건 정답을 찾으려는 행위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결론이 없는 세상에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늘 정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건 아니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을 찾는 ‘과정’ 중에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경험과 감정이야 말로 내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건강한 질료라 믿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철학은 정답을 찾거나, 누군가를 헐뜯기 위한 수단이 아닌 내 삶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고찰하는 단순한 사유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나는 철학을 사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니체, 한나 아렌트와 칸트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응집하고 정리해놓은 기록과 주장 또한 애정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는 과정을 향한 존경이야 말로 내가 진정으로 철학을 사랑하는 이유임을 다시 한번 아로새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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