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글
나는 언젠가부터 컨셉추얼 conceptual 이라는 단어에 은근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표현이 만연한 시대, 누군가에게 더 눈에 띄고 선택받기 위해선 차별적인 콘셉트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시각적 차별성.
치열한 시장 속 생존본능일지도 모른다. 아니, 시장을 넘어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늘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자 하는 욕망은 존재하니깐. 단지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산물일지라도 지나친 콘셉트를 꾸리고, 속이 빈 미사여구로 정체성을 휘감는 일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이는 어쩌면 상대를 속이는 위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현대 시장은 그런 위선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양상은 유지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철학에 매력을 느낀다. 누구나 기본이라는 가치는 필히 지켜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기본을 논하는 건 진부하고, 트렌디하지 못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혹은 당연한 것을 굳이 언급하는 일이라며 비아냥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 당연한 기본을 간과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이 기본을 간과하는 이유는 무의식 중, 기본이란 화려한 수사에 비해 훨씬 더 다루기 어려운 가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은 영감에 비해 긴 시간과 피나는 노력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에디슨이 말하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란 결국 차별성은 1%의 영감에서 오는 것이지만 99%의 노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1%는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나는 해석한다. 즉, 진정한 차이를 위해선 노력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나는 이 노력을 기본이라는 표현과 치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1%의 영감보단 99%의 노력에 더 집중하는 사람들, 집단들 그리고 브랜드들을 애정 한다.
콘셉트이란 탄탄한 기본을 전제했을 때 진정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오히려 기본이 탄탄하면 휘황찬란한 기교 따윈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를 두고 클래식이라 말하고, 영구적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이가 들수록 슴슴함에 매력을 느끼는 내겐 비록 강렬한 매력은 없어도 은은하고, 최대한 오랜 시간 영위할 수 있는 표현과 디자인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가 더욱 주목받는 시대가 언젠간 오리라 믿는다.
기교에 절대가치를 두는 시대, 어쭙잖은 1%의 영감으로 가득 찬 xy 축에 z 축을 꽂아줄 수 있는 진정한 블루오션은 심심할지 몰라도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빨리빨리가 만연한 시대에 은근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며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들이 조금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시대에 일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