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독백, 위험하지만 '사랑'에 대하여.

개인적인 이야기

by 정영신


언젠간 꼭 다루고 싶었던 주제입니다. 이렇게 빨리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쓰리라 생각지 못했지만 용기를 내어 이 예민하고도, 거창한 주제를 다뤄볼까 합니다.


저는 비교적 운이 좋게도 건강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나조차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부모님과 누나, 제 인생에 적잖은 영감과 깨달음을 준 연인, 그리고 모난 성격에도 저를 좋은 사람이라며 친구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이어가 주는 친구들까지. 아마 제가 별 탈 없이 서울이 훤히 보이는 안락한 카페에 앉아 속 편히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보내준 사랑 덕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이 관계들 속에서는 크고 작은 만남과 이별이 존재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론 모두 사랑으로 기억할 수 있는 인연임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제게 그들은 매우 중요한 추억이고,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독백비독백은 제게 사랑을 보내준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를 빌려 사랑을 묘사하고자 했으나 이 모든 관계를 다루기엔 다소 글이 장황해질 것 같습니다. 그간 가족과 친구를 향한 사랑에 대한 글을 솔찬히 써왔던 만큼 오늘은 조금의 용기를 보태 ‘연인 간의 사랑’에 대한 단상을 써 내려가 볼까 합니다. 아마도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정리하고, 그 감정들을 감화하기 위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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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 한 번의 연애를 꽤나 긴 시간 동안 이어왔습니다. 자그마치 6년이란 세월을 전 연인과 함께 나눴으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제겐 애틋하고, 잊지 못할 인연이자 추억일 겁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연인이 된 순간은 감각적으로 기억합니다. 빠른 주기로 가슴이 요동치고, 이내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지던 순간. 가족이 아닌 다른 이와 사랑을 나누고, 나라는 존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제겐 큰 의미였습니다. 제겐, 아주 큰 행복이었습니다.


연인이 된다는 건 길을 거닐 때 손을 잡고, 같이 영화를 보고, 입을 맞추는 단순한 물리적 교감 그 이상의 가치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건강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지 부단히 고민했습니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생각을 나누고, 대화를 이어가고,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아마도 제게 사랑이란 스스로 고독할 줄도 알도록 돕는 관계,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정진하는데 지지해주고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것 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은 미숙한 자신조차 사랑할 줄 알 때 비로소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으리란 저의 설익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정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강인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제 자신을 열심히 담금질했고, 연인에게도 그런 기회가 돌아가길 바랐습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그때 그 시절을 회고해보면 저는 역시나 어리숙한 사랑을 하고 있었음을 체감합니다. 마치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던 시간들. 물론 의식적으로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결국 저는 ‘내가 좋은 게, 그에게도 좋은 것’인 양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형태의 사랑은 존재할 수 없는데 말이죠. 반면 상대는 제가 원하는 보폭으로, 제가 원하는 속도로 발을 맞춰주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조차 제가 좋은 게 본인에게 좋은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소실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생각을 하면 여전히 마음이 시큰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치달았단 순간에도 저는 창피할만한, 한심한 시간을 제 손으로 초래했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피로해져버린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셈이죠. 저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꽤나 많은 후회가 마음을 일었습니다. 가끔은 낯선 자괴가 엄습하는 바람에 고통스럽게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습니다. 그간 내가 생각했던 사랑이 건강한 사랑을 위한 길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원치 않았던 결론에 가닿았던 건 오히려 흔들림 없던 나만의 믿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어리숙한 사랑을 완강하게 밀어부쳤던 스스로를 향한 실망보단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상처와 피로를 줬다는 사실이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 탓을 하는 게 마음 편했고, 지금도 여전히 저에게 많은 몫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한창 힘들었던 시기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을 많이 비워냈습니다. 물론 그간의 추억을 모두 지워버렸다는 건 아닙니다. 다소 아픈 기억이더라도 더 좋았던 추억으로 덮어내고, 눌러내고, 어여쁘게 그릴 수 있는 여유를 지니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모질고, 한심했던 순간들, 술에 잔뜩 취해 씻지도 않고 잠에 들던 밤, 삼시 세 끼를 굶고 정처 없이 걸어 다니던 밤거리들. 이 모든 추억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비록 여전히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힘들었던 시절의 저보다는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음을 체감합니다.




결국 누군가는 떠났지만 그와 함께 했기에 즐거웠던 행복은 제 삶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그 기억에 대해선 분명히 감사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모든 순간들이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함께 지새운 크고 작은 시간들이 조각조각 모여 하나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빚어지는 감각을 저는 여전히 애정합니다. 그 사람 자체를 사랑했던 그 순간을, 나와 함께 있어 준 사실에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되려 수정주의에 더 믿음을 두는 편이죠. 이 개인적인 믿음이 제게 큰 위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미숙했던 시절을 깊이 후회하는 만큼 앞으로 더 잘하면 되니깐요. 저는 그렇게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은 가짐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좀 더 건강한 사랑의 정의를 깨닫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큰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저는 앞으로도 거창한 사랑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 로맨틱한 사랑도 분명 좋은 사랑의 형태겠지만 저는 그보다 조금 더 단조롭고, 일상적인 형태로 서로의 삶에 녹아들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어깨를 내어주고, 보완하며 각자 건강한 사람으로 거듭나되, 함께 더 나은 사랑을 빚어갈 수 있는 그런 인연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요.


그렇게 저는 상실을 통해 이별조차 사랑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떠나간 그 순간에도 아니, 떠나고 난 뒤에도 적지 않은 영감과 깨달음을 줬던 사람을 만난 덕분이죠. 저는 제가 지닌 것에 비해 상당히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젠 앞으로 제가 더 크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 제게 사랑을 보내준 이들에게 돌려줄 일만 남은 것 같네요. 부단히 노력해보겠습니다.


아마도 전 연인을 향한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젠 서로 흔적을 지워낸 만큼 거리도 멀어졌지만 그가 더 멋지고,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길 다신교도의 마음으로 무한히 소망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가 남기고 간 소중한 의미와 행복한 기억들을 토대로 더 성숙한 사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볼 예정입니다.


세상에 쓸데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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