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떨리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어렵사리 대학에 합격한 후, 때늦은 입대를 앞두고 있던 저는 좋은 기회가 생겨 잠시 뉴욕에 머물 기회가 있었습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던 시절, 제가 할 수 있던 건 연고도 없는 맨해튼 거리를 누비며 홀로 상념을 즐기는 일 뿐이었죠. 어떤 계기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당시 지금 생각해도 꽤나 무거운 고민들을 끌어 안고 살았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박혀있던 단어는 ‘어른’이었습니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공식적으로 청소년을 벗어나 20대가 된 저는 말그대로 저를 말해주는 숫자의 앞자리가 바뀐 것과 주민등록증을 손에 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변한게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회적으로 ‘성인’이 되었고 그에따라 ‘어른’이라는 수식어가 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른이라함은 왠지 모르게 변곡점을 지난 삶을 살아야할 것만 같고,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할 것 같았습니다만 저는 여전히 어린 아이였습니다. 철없고, 설익은 그런 어린 아이말이죠. 하지만 앞으로 제가 끌어 안고 살아가야할 수식어에 대한 사회적인 정의와 더불어 나름의 개인적 정의가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회적 정의는 이미 어느정도 답이 정해져 있는 만큼 크게 고민할 것 없이 정해진 통념을 따르면 됐습니다. 제게 남은 숙제는 오로지 어른을 향한 개인적 정의였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전과 달라진게 있다면 무엇일까. 키도, 외모도 변하지 않았고 재력과 명예는 있다가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른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설명해주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였습니다. -역시 젊었던 만큼 다소 거창한 해석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좀 더 만족스러운 탐구를 위해 면밀하게 저의 바다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가 밟아온 시간을, 딛고 있는 현실을 빚어온 마음의 길을요.
하나의 생각이 비눗방울처럼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가슴 떨리는 일.’ 저는 이전에 비해 가슴 떨릴 일이 사라졌다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꿈이 사라진 것도, 기대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마치 마음에 가뭄이라도 인 듯 소록소록 마음에 내렸던 비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예고도 없이 흩뿌리는 여우비 마냥, 홀연히 많은 비를 쏟아내고 가는 소나기 마냥 간헐적이고 굴곡진 감정만이 존재했습니다. 건조해진 삶의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아는 게 많아질수록 잃는 게 많아지는구나. 그게 어른인걸까’ 유니온 스퀘어에 위치한 한 커피집에 앉아 남겼전 자문. 꽤나 설익은 자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앞선 표현으로 어른의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실은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배움의 성취나 시도를 향한 동기보다는 지레 겁먹고 도전하지 못하는, 상식과 계산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수치적이고 확률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분명 건강한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가짐이었지만 그 시선이 차지하는 영역은 역병을 옮기듯 빠르고, 넓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이 역병이 자꾸 나의 개인적 설렘을 집어 삼키는구나. 그리고 그 역병은 다른게 아닌 나의 바다가 낳은 괴물이구나. 혼란스러웠습니다. 비단 어른이란 더 나은, 더 성숙한 삶을 영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비겁하고, 좁은 삶을 추구하는 존재라니. 그렇게 주머니가 가벼웠던 방랑자는 끊임없은 자문과 자답으로 인해 끝을 알 수 없는 상념의 늪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숙제를 끌어 안은 채 저는 화학과에 입학하여 4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이내 패션 업계에 발을 들여 4년이란 경험을 쌓았죠. 화학에서 패션으로 선회한 동력은 아마 뉴욕의 빈털털이가 마음으로 품었던 상념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가슴 떨리는 일을 향해 나아가자.’ 학과 시험을 잘보는 것보다 패션 브랜드를 조사하는 일이 더욱 흥미로웠고, 시원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단 패션 브랜드 스토어에서 옷을 파는 일이 더 즐거웠습니다. 물론 화학이 패션에 비해 더 안정적이라는 사회적 시선이 팽배했지만 제게 외부적인 시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 가슴을 떨리게 하는 일은 화학이 아니라 분명 패션이었거든요. 패션의 세계에선 아는 게 많아질수록 하고 싶은 게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고, 이런 건 저렇게 바꿔보고도 싶고. 업계를 향한 허영심과 호기심이 이리저리 얽히고 설키며 결국 제 인생의 꿈을 완성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가슴 떨리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자.’
디터람스와 스티브 잡스, 하라 켄야, 후카사와 나오토와 로낭 부홀렉까지. 그들의 디자인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가슴이 떨립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라함은 나를 넘어 인류에 적지 않은 변화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했다는 방증일테니깐요. 저도 저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그런 삶이 제 기준에서 의미있는 삶이고, 성취로운 삶이기 때문이죠. 그들이 기성의 편견에 맞서 묵묵히 꿈과 소망을 실현해왔듯 저또한 꾸준한 노력을 통해 꿈을 이뤄가고자 다짐합니다. 이 길 앞에 닥칠 파도가 매우 거칠고, 험난할지라도.
비록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지식의 세계에선 체득할 수 없는 지혜를 통해 열의있는 디자이너들과 의미있고 가치있는 브랜드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누군가는 거창한 이상으로 바라볼 법한 이 목표는 분명 사소하게 떨리던 가슴에서 시작했다 저는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떨림이 가르키는 방향이야 말로 제가 원하는 삶을 건강하게 충족시켜 줄 길이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이 패기와 무식함, 그리고 용감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와 더불어 여러분들에게도 가슴이 떨리는 일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는, 그런 살아 숨쉴 수 있는 삶을 영위하실 수 있길 간곡히 소망해봅니다.
우린 분명 그런 삶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