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하여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편이라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더러 존재한다. 가령 상대의 언동만으로 캐릭터를 예단한다던지, 말하고 있는 상대를 김새게 한다던지. 내게 눈치란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 길러진 유용한 사회적 감각이자 능력이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너무나도 달라졌다. 결론적으론 "늘 이롭지만은 않더라."
상대를 파악하는 일은 내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교감을 위해서. 교감을 빌려 유대를 갖고, 그 유대로 하여금 좋은 에너지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지만 나는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교감에 힘쓰기보단 빠른 눈치를 활용해 <관찰>만 이어왔다. 즉, <소통> 해보고자 했던 시도는 늘 미미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오만했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습관에는 강한 관성이 작용하는지라 자신의 고질적인 문제를 깨닫더라도 쉽게 고쳐지진 않더라. 그래도 늘 마음으로 품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상대와 소통하는 것에 힘쓰는 일이었다. 터울 없이 <대화>하는 것. 내가 말을 건네야지 만이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예상외로 소심하고, 조심스러웠던 나였기에 소통이란 너무나도 낯선 마음의 움직임이었지만 진정 나를 위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좀 더 텐스하게 말하자면 극복해야 할 과제.
요즘은 소통을 잘하는 사람들이 갖는 긍정적 에너지를 믿는다. 물질적으로 혹은 환경적으로 동질감을 갖는 사람과의 접촉만을 지향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써 관계를 바라보는 사람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얼마나 갖추기 어려운지 가장 잘 아는 나로선 때론 별거 아닌 상대의 소통능력에 경외심을 느낄 때도 더러 있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배우기로 했다. 그들의 자세를.
너무나도 행운인 건 내 주위에 그런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족이 되었건, 친구가 되었건, 동료가 되었건. 긍정적으로 대화하는 사람들. 관계를 이해타산적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 날이 갈수록 여전히 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다. 그리고 한편으론 모자라기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되고, 다시 한번 주위를 환기시킬 수 있으며, 끝내 나를 채워갈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