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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Mar 15. 2016

단 한 순간도, 초라하지 않았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10/11화]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것

연출 / 김규태
극본 / 노희경

방송일 / 2013년 2월 13일 ~ 2013년 4월 3일

살고 싶어 하는 남자, 오수
죽고 싶어 하는 여자, 오영

인생의 양 극단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아픔을 마주하고 치유하는 이야기.



#초라해지기 싫었다.

오수(조인성)
야, 너 대단하다. 멋지다 진짜.
예쁘고 착하고 쿨하고 머리 좋고 돈 많고
게다가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야 진짜. 참 재수없다 너.
내가 너보다 나은 게 딱 하나 있어.
난 어떤 순간에도 살고 싶어 한다는 거야

오영(송혜교)
난, 니가 나를 이해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죽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며, 그래서 약을 준비했다며.

오수
오기지 그건. 그 약을 보면서 죽을 각오로 살자.
분명히 말하지만 난, 늘 살고 싶어.

오영
넌 살고 싶으면 살아지지만 난 살고 싶어 해도 살 수 없어.
여섯 살 때부터 준비한 거야.
만약, 언젠가 때가 오면, 지금처럼 웃으면서 가야지. 구차하게 연연해 말아야지.
너랑 있는 이 순간도 너무 좋고 따뜻해도 연연해하지 말아야지, 그립지 말아야지,
단념하지 않으면 구차해질 뿐이니까 애원하지 말아야지.
여섯 살 때부터 준비한 거야. 그러니까 날 흔들지 마, 날 기대하게 하지 마.

오수
넌, 거짓말하는데 아주 재주가 없어.
넌 죽고 싶지 않아, 넌 살고 싶어.
니가 그걸 인정하는 순간, 초라해지는 게 겁날 뿐이지, 근데, 미안하게도
지금 니 모습이 난 더 초라하게 느껴져.

죽는 순간까지 나랑 즐겁게? 이게 즐겁니 넌?
니 뜻대로 안돼. 살고 싶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제 아무것도 니 뜻대로 안 될 거야.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이기적이다.

살고 싶은 의지가 없는 영이를 보며 속상한 오수. 영이는 자기가 죽기 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말하지만 그녀의 말이 오수에겐 기가 찰뿐이다. 화가 난 오수는 영이를 밖으로 끌고 나온다.

오수
니가 살아있는 동안, 내가 떠나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어림없어. 넌 내가 널 떠나보내고 어떤 마음일진 상관이 없어. 그지?
내가 널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만지고 싶어 할지 넌 상관이 없어, 그지?
죽으면 그뿐이니까. 니가 이렇게 싸가지 없는 앤 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너랑 음식을 만들고 눈꽃 소리를 듣고, 널 안고 그런 마음 아픈, 그런 잊을 래야 잊을 수도 없는,
절대 만들지 않았을 거야.
그동안 너는 죽기 위해 추억을 만들었다면
이제 나는 살기 위해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나는, 살아야겠으니까!
이렇게 너랑 아픈 추억만 있다면 니가 죽고 난 다음, 널 잊기 어렵지 않을 거야.


장작가의 요거트라디오

눈이 멀고 난 이후, 오영(송혜교)은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혼자 힘으로 어떤 것도 해낼 수 없는 그녀는 무기력하게도 누군가가 필요하다. 오영은 주변인들이 자신의 재산 때문에 곁에 남아있는 것이라 여긴다. 일부는 거짓일지라도 그녀의 경계심은 날로 커져만 간다.

마음을 주고, 믿음을 준 누군가에겐 얼마 못가 배신이란 이름으로 돌아왔다. 이때 타인에게 켜켜이 쌓인 상처를 겉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타인에게 자신의 약점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만만하게 보지 마.
나는 결코, 상처받지 않아.


자연히 그녀는 높고 단단한 방패막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게 된다.
차가운 표정, 단호한 말투,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태도.
그런 그녀의 속을 훤히 꿰뚫어본 남자가 있다. 그녀의 가짜 오빠, 오수(조인성)다.

오수는 78억이라는 빚을 갚기 위해 오영의 가짜 오빠 행세를 하는 사람이다. 오영의 재산을 목적으로 시작한 관계, 그는 살고자 아등바등한다.
나무 수(樹).
나무 밑에 버려졌다는 이유로 붙여진 그의 이름. 그는 이름에서조차 사랑이 없다. 어릴 때부터 결핍된 사랑은 그를 더욱 엇나가게 만들었다. 그에게 있어 인생은 만만한 것이었다. 자신을 위해 누구 하나 슬퍼할 사람도, 기도할 사람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인생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인생'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죽고 싶어 하는 여자, 오영'이 나타난다.

죽고 싶어 하는 여자, 오영
살고 싶어 하는 남자, 오수


두 사람은 양 극단에 서 있어 달라 보이지만, 결국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신과 유사한 모습에 서로에게 끌리게 되고, 상대를 그리고 자신을 치유하게 된다.

필자는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 때문에 화가 나고, 속상하는 것들은 어쩌면,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오수가 오영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소리치고 화를 내는 모습은 어쩌면, 내가 더 이상 마음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나오는 무의식적인 행위가 아닐까.

또 한편으론, 자신과 닮은 상대를 보며 '자기 객관화'를 하게 된다. 상대방의 이해할 수 없는 점, 모순되는 점, 참을 수 없는 것들. 이것들이 나의 눈에 괜히 잘 띄게 것일까? 아니다. 내가 지닌 문제점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에서도 쉽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자신과 닮은 상대를 사랑하면서 상대를 가엽게 여기지만, 사실, 우리가 가장 가엾게 여기는 대상은 바로 나,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외치는 간절한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자. 어쩌면 나를 향한 위로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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