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희덕 푸른 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나를 마냥 기쁘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게 사랑일까.
너를 사랑한다는 말속에는
네가 가끔 못난이처럼 굴어 미워도
내 마음 다독여주지 않는 매정한 말로 아프게 한대도
가슴한켠에 찬바람이 불며 내 마음이 시려도
너를 밀쳐낼 수 없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말이 아닐까.
너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네가 나에게 그런 짓을 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할 때
받은 상처였기에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던 배신감과
넌 다른 사람과 다를 거야 라며
너에 대해 자만하던 나에게 실망감도 들었다.
화를 내기 위해, 더 이상 널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눌렀던 네 번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해맑게 들려오는 반대편 너의 목소리에
나는 어찌 설명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찼었다.
그리곤 전화를 무작정 끊어버렸다.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오는 헐떡이는 내 눈물에
화를 낼 힘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곤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왜 나는 네가 자꾸만 보고 싶을까.
그렇게 끊어버린 마지막 통화 후,
내 핸드폰에 남긴 너의 부재중 통화 14통.
네가 얼마나 초조해하며 불안에 떨고 있을지
왜 나는 그딴 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난 분명 너에게 화가 났는데..
그때 깨닫는다.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널 사랑하는구나.
잠못든 새벽에 서리 낀 희미한 아침해를 볼 무렵까지,
수없이 많이 반복했던 분노와 좌절, 그리고 너에 대한 그리움.
나는 어쩔 수가 없구나.
아무리 미워도, 아파도
네가 더 아플까 걱정이 되는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