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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Aug 04. 2020

좋은 집 구하기가 아니라 나쁜 집 피하기 ※긴글주의※

안목은 세월에 비례하지 않더라구요.

올해 봄, 전세 계약을 했다. 타향살이 6번째 집이다. 1-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던 것 같고, 1평이 안되는 고시원에서 시작해 전세집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물론 대출이 거의 대부분인 상태지만 헿. 크고 좋은 집에 대한 갈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졌고, 이사를 갈 때마다 지금보다 더 넓고 좋은 집을 찾아다녔다. 아마 충격적으로 좁은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오롯한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망이 크게 자리잡은 것 같다. 

그런데 집을 구한다는 것이 마음만큼 쉽지가 않았다. 심지어 부동산 관련된 회사에 다닐 때 얻은 월세집도 하자가 많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좋은 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괜찮은 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만 존재한다. 최근 부동산 정책때문에 말이 참 많은데 다주택 보유자, 투기지역, 로또분양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고, 어려운 용어들에 머리만 지끈거린다. 그래도 이시대를 살아가며 괜찮은 월세방을 찾아 오늘도 발품을 팔고 있을 청춘들을 위해 10년의 집구하기 스토리를 적어볼까 한다. (고시원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이라 고이 접어둔다.) 


첫 번째 집 "반지하는 그냥 지하입니다"

고시원을 벗어나 선택한 첫 번째 집은 신당동 반지하집이었는데 지하철 환승을 한 번 해야했지만 회사와 가까웠고 월세가 특출나게 저렴했다. 네이버 피터팬의 좋은방구하기 카페에서 세입자와 연락해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났는데 언덕을 한참 걸어가도 계속 다와간다는 말만 반복할 뿐 집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에 부동산 직거래를 하다 사고가 생겼다는 흉흉한 얘기를 들은터라 같은 성별의 세입자였지만 불안한 마음이 컸다. 성곽길 아래에 있는 그 집은 키티덕후가 거주하는 집으로 온통 핑크천지였고, 고시원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큰 상태였기 때문에 더 볼 것도 없이 '싸다'는 이유 하나로 도장을 찍었다. 


부동산 계약이 처음인 사회초년생이 집은 또 얼마나 대충봤을까. 벽지나 장판을 새로 해달라는 요구를 하지도 않았고 (해야한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이전 세입자는 방을 꾸미다 남은 키티벽지 한 무더기를 씽크대 하부장에 우겨넣어놓고 튀었다. 미니냉장고는 덜덜거렸고, 그냥 방문과 같이 나무문이었던 화장실문은 부식되어서 문지방이 너덜너덜했고, 벌어진 나무틈 사이에 나쁜 것들이 기생하고 있었다. 반지하도 어느 정도 반지하냐에 따라 추천하고 말고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신당동 집은 지나다니는 사람들 발목까지만 딱 보이는 정도였고, 나뭇잎과 동네 먼지들이 다 우리집 창틀로 굴러들어와서 창문을 열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오래된 벽돌집의 반지하는 벌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실제로 온갖 벌레들과 동거를 했고, 곱등이가 그 중 최악이었다. 죽지도 않는 좀비같은 새끼. 영화에 나오는 좀비가 차라리 나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내 인생에 반지하는 없다고 다짐했다. 아무리 제습기를 돌려도 눅눅함은 사라지지 않고, 공기청정기의 빨간불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집은 고산지대라고 불러도 될 만큼 높은 위치에 있었는데 재설작업을 하지 않으면 눈오는 날 회사를 가기가 어려웠고, 동네 아저씨가 한 삽 퍼면 한 걸음 내딛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아니라 삽질하는 사나이가 있어야 출근이 가능했다. 등산객은 한 겨울 미끄럼방지로 아이젠을 차고 우리 동네로 오르는데 나는 슬리퍼를 신고 언덕 아래 슈퍼까지 거뜬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아 튼튼한 다리를 얻은건 과연 장점일까 단점일까?


두 번째 집 "햇빛은 포기하지 마세요"

반지하 힘들었다고 징징거려놓고 갑자기 빌라로 신분상승했다. 결혼한 언니가 형부의 직장때문에 서울에 살게 됐었는데 아기를 낳고 다시 직장문제로 다른 지방에 내려가야 했다. 전세기간이 남은 그 집이 갑자기 빈 집이 되었고, 그동안 집을 관리해준다는 명목하에 투룸의 빌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예!!!!!!!!! 

반지하를 벗어나 2층인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엄청 큰 침대도 있고, 화장실이 춥지도 않았고, 씽크대도 엄청 컸다. 갑자기 넓어진 집에 당황할 새도 없이 금방 익숙해져서는 방 2칸을 죄다 어지럽히며 살았다.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햇빛이 거의 들지않는다는 거였는데 당시 새벽퇴근을 밥먹듯이 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암막커튼없이도 잠을 잘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철없는 소리를 해댔다. 


집에 햇빛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나쁜 아니 최악의 조건이다. 빨래는 마르지 않고, 화장실은 아무리 열심히 청소를 해도 쾌쾌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낮인지 밤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만큼 컴컴했기 때문에 집에서는 잠자기,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던 것 같다. 분명 많이 잤음에도 축 쳐지는 시간이 늘었고, 피곤은 없어지질 않았다. 그 중 최악은 앞서 말한 곰팡이인데 안방벽에 결로가 정말 심한 집이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사방이 막혀있다는 뜻이고, 겨울철 집안 난방온도가 올라갈수록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 온도차이때문에 벽에 이슬이 맺히고 벽지에 스며들면서 벽 한 쪽이 온통 곰팡이 파티가 되었다. 환기는 물론 청소도 제대로 안하고 살았던 시절이라 커다란 커텐 뒤에 곰팡이가 서식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자고 먹고 했으니 병이 안난게 다행이다 할 정도였다. 원래도 숙면과 거리가 먼 타입이었는데 불면증이 생긴 게 이 집에서부터였다. 집관리를 목적으로 더부살이한 처지에 곰팡이를 키웠으니 언니의 등짝스매싱과 욕지거리를 피할 길은 이사 뿐이었다.


세 번째 집 "역세권도 좋지만 대로변은 피하는 게 좋아요"

곰팡이때문도 있었지만 빌라 계약기간이 만료되어가는데 그 사실을 까먹고있던 언니 덕분에 집을 찾고 이사를 갈 시간이 2주밖에 없었다. 상도동에 사는 회사 동료들이 그 동네가 좋다는 얘기를 더러 했어서 당장 부동산 투어를 했다. 막내이모 스타일의 중개사를 만나 이곳저곳을 보다 마지막으로 본 집이 여러 방면으로 적당한 조건이라 그 날 또 바로 계약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가장 마음에 들어할 집은 가장 나중에 보여준다고 하더라 허허. 상술(?)에 넘어간 그 집은 8차선 대로변에 있는 상가건물이었는데 1,2층에는 상가가 있고 (1층엔 무려 파리바게트♡) 3층부터는 원래 상가건물이었으나 개조해서 원룸을 만들었고, 가장 안쪽 집이었기 때문에 상가에서 나오는 소음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어서 높은 점수를 줬고, 대로변으로 창문이 크게 나있어서 채광이나 환기도 괜찮은 편이었다. 화장실 문이 특이하게 현관문같은 레알 철문이었는데 녹슬줄 모르고 그냥 튼튼하겠거니 생각했다. 지하철 도보 3분 컷에다 대학가 근처라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있었다. 


여름이 지나갈 즈음에 이사를 했는데 겨울이 되면서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를 알게 됐다. 웃풍이었다. 처음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라고 생각해서 창문에 뽁뽁이를 두껍게 발랐었는데 창문을 포함해 대로변을 향한 벽 전체에서 냉기가 흘러들어왔다. 거주 용도로 지은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단열에 신경을 덜 쓴 것 같았고, 대충 구색만 갖춘 온돌식 난방으로 그 차가운 공기까지 데우기는 불가능했다. 가만히 이불에 누워있으면 전기장판때문에 몸은 따뜻한데 코는 시려운 노릇이었다. 그리고 집을 고를 때 거주 용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가스가 있다. 도시가스를 설치할 수 없는 용도의 건물이기 때문에 가스레인지 대신 1구짜리 휴대용 하이라이터를 옵션으로 뒀었는데 라면물 하나 끓이는데 1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요리는 커녕 물 하나 끓이기도 어려웠다. 물론 요즘은 하이라이터나 인덕션이 많이 좋아져서 가스레인지보다 훨씬 편하다고는 하더라. 그 때는 하루에도 열 두번씩 하이라이터를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살았다. 쓰다보니 또 열받네.


네 번째 집 "반려동물은 신중하게"

세 번째 집은 너무 추웠지만 회사 동료들의 말대로 상도동 자체는 정말 살기 좋은 동네였다. 그래서 월세 계약 만기에 맞춰서 또 다시 상도동으로 집을 보러다녔다. 역시나 가장 마지막에 마주한 이 집은 1층이지만 계단 5개 정도 올라오는 위치이기 때문에 길거리의 사람들이 집을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였고, 빌라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컸다. 그래봤자 6평 정도였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원룸 건물처럼 생긴 집이었고, 작은 골목으로 큰 창문이 나있어서 햇빛도 적당히 들어왔고 추위도 덜했다. 그리고 집주인 할머니를 포함해 3대가 건물 꼭대기층에 살고 있었다. 동네 자체가 조용했지만 작은 식당부터 미용실, 편의점, 카페, 슈퍼, 시장, 없는 것이 없었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는 것도 참 좋겠다 생각했다. 부동산투어를 하고 살짝 고민하는 척은 했지만 역시 그 날 바로 계약했다. 평지였고 지하철까지 5분이 조금 넘는 거리에 있다는 것도 한 몫했다. 


화려한 꽃벽지 & 입주할 때는 혼자였지만 갑자기 둘이 된 이유, 고영희씨


사실 이 집은 조금 비싸다는 것 외에 나쁜 점을 찾기 어려운 집이다. 상도동 특히 상도역 주변이 오래된 건물이 많지만 상권이나 교통이 좋아서 상대적으로 근처 동네보다 시세가 더 높은 것은 사실이다. 대신 주변 인프라가 좋으니 편리함이 장땡인 나에게 나쁘다 할 수는 없었다. 굳이 나쁜 점을 찾자면 집주인이 같은 건물에 산다는 것. 쓰레기 분리수거나 잦은 택배에 간섭을 하는 편이셨고, 보일러나 무언가 고장나면 집주인으로 응당 해줘야할 것들을 할머니라서 아주 느리게 해결하거나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정도? 아! 그리고 꽃무늬를 너무 좋아하셔서 유치찬란한 벽지를 내 돈 주고 바꾼다고 해도 허락해주지 않았다는거 정도? 이렇게 쓰고보니 되게 나쁜 임대인같지만 악덕 집주인에 비하면 천사급이었다. 그래서 이 집에서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덜컥 생겼고, 102호 세입자와 반려동물 때문에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입자라면 응당 집주인의 허락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부동산은 강아지일 경우 집주인에게 알려야 하고 (짖기 때문에) 고양이는 상대적으로 얌전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조용히 키우라고 조언을 하는데 어디 이 친구들이 내 마음대로 되는 친구들인가? 집주인이 같은 건물에 살지 않는다면 마주칠 일이 거의 없으니 몰래 키우는게 가능은 하겠지만 아니라면 상황은 다르다. 그리고 임대차 계약서에 반려동물이 안된다는 조항이 있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가라면 나가야하고, 세입자는 입주할 때의 상태 그대로 집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이 벽지를 뜯어놓는다거나 장판을 씹어놓았다면... 보수를 해야 할 의무 역시 있다는 것을 잊지 말 것. 나는 어리석게도 몰래 키울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그건 고영희 친구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리석었다.


다섯 번째 집 "급하다고 대충 보면 급사한다"

이번엔 진짜 신분상승이다. 사실 타이밍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남동생이 취업으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됐는데 하숙집을 비워줘야 할 시기와 입주시기가 맞지 않아서 졸지에 동생과 잠깐 같이 살아야 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약간의 원조를 받아 투룸을 구하게 됐다. 퇴근하고 6-7개의 집을 봤었는데 약간의 언덕에 있는 이 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중개사에게는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걸어서 그 집에 다시 가봤다. 좋은 집 구하는 꿀팁모음 이런걸 보면 낮과 밤을 다 가봐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언덕에 있는 집이고 차를 타고 이동했다면 꼭 걸어서 다시 한 번 가보길 추천한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정말 높은 언덕이라 사실 마음을 접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걸어가보니 그렇게 가파르지 않았고 집주인은 다른 집에 산다고했고, 반려동물이 가능하다고해서 바로 계약금을 보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창피해서 할까말까 고민했는데 집을 구할 당시에 부동산 관련된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집을 굉장히 꼼꼼하게 봤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위치와 가격, 특징, 조건들을 정리해가면서 봤는데 딱 이 집만 대충 훑어봤다. 남자인 세입자가 거주하는 중이었고 굉장히 피곤한 티를 팍팍 내서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없어서 방의 크기나 창문, 수압 등 필요한 것만 체크하고 나왔더랬다. 잔금을 다 치르고 이사 전날 친구와 함께 이것저것 확인하려고 들린 그 집의 상태는 가관이었다. 가장 할 말이 많은 집이다. 일단 화장실은 세탁기가 들어가고 남을 정도로 넓었지만 너무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서 깨지다 못해 부서진 곳이 많았고, 세면대 아래 물이 나가는 배관은 어디간지 사라졌고, 물을 틀면 바닥으로 바로 떨어져서 양말을 다 적셨다. 무엇때문인지 시트지를 다 덮어놨는데 모서리를 뜯으니 타일이 같이 딸려와서 2년동안 포기하고 살았다. 수건을 넣는 수납장은 녹이 슬어서 아무것도 넣고싶지 않았다. 왜! 왜!! 집을 보러 갔을 때는 이런걸 확인하지 않았던거니? 분명히 화장실문을 열어봤고, 그 때는 상태가 괜찮았다고 기억했단 말이다! 인간의 기억은 생각보다 무서운게 이 집의 화장실과 그 전 집의 화장실을 혼동했고, 하루에 여러 개의 매물을 보면 이렇게 되는 것 같다. 구글 시트에도 화장실 오래됐지만 괜찮음 이라고 적었드랬다. 같이 집을 봤던 친구도 이 집이 이럴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단다.


총체적 난국의 그 화장실.jpg


부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저 오래된 집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던 씽크대는 상부장이 곧 떨어질 것 같았고, 타일에는 역시 장미꽃 모양의 시트지를 붙여놨는데 한 겹을 뜯으니 새로운 시트지가 나오고 또 나왔다. 이전 세입자들이 4겹의 다른 모양의 시트지를 바르며 살았던 것이다. 심지어 가스레인지 쪽 시트지는 뜯어보니 그으름이 한가득이었다. 이사 후에 시트지도 뜯고 상부장도 뜯었는데 상부장 뒤에 커다란 창문이 숨겨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상부장이 있을 때는 분명 부엌창같이 작은 창문이었는데 갑자기 큰 창문이 하나 생겼네. 득템이라고 생각해야하나? 그리고 집주인을 꼬셔서 상부장 자리에 미장을 하고, 타일을 발랐고, 나도 돈을 지불했다. 대신 갑자기 튀어나온 창문의 오래된 샷시는 집주인이 현대식으로 갈아줬다. 아 집주인..! 다른 집에 산다던 집주인은 같은 건물 심지어 바로 윗층에 살고 있었다. 실제로 몇 달 전까지는 다른 곳에 살았는데 공교롭게도 이사를 온 것이다. 사기까지는 아니지만 중개사에게 따져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자기도 몰랐다는 대답뿐. 



그리고 이 집은 특이하게 벽지 대신 단열기능이 있는 스티로폼같은 것을 붙여놨는데 오염에 약해서 이전 세입자가 집에서 담배를 피워댔는지 창문 쪽은 누렇게 변색되었고, 모기를 잡고 닦지 않은 흔적이 무수했다. 

나는 불평불만은 많지만 생각보다 무디고 적응을 잘 하는 사람이라 저런 집의 상태를 2년동안 잘 참고 살았다. 세면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양말을 신지만 않으면 되고, 오히려 물을 틀 때마다 발을 씻게 되니 좋은 점이라 생각했고, 더러운 곳은 청소를 하면 됐다. 그리고 곧 부서질 것 같은 옵션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세입자는 집과 옵션을 이사올 때의 상태와 동일하게 유지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내 탓이라는 말을 듣지 싫어서 건들지도 않았다. 대신 처음 이사올 때 사진과 동영상을 엄청 꼼꼼히 찍어서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해뒀다. 나중에 딴 말 할까봐.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았던 집이 거의 방에 가까운 크기였다면 이 곳은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넓었다. 작은 방을 드레스룸으로 쓰고, 큰 방은 침대와 책상, 쇼파와 TV, 길다란 서랍을 2개나 놔둬도 공간이 남았다. 집다운 집이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채광이 부서져가는 물건들을 외면하게 해줬다. 그리고 고양이를 허락한 유일한 집주인이기도 했다. 그동안 집이 좁아터져 친구들을 부르기 뭐했었는데 뻔질나게도 들락거리게 됐다. 우리 집을 '초장집'이라고 부르면서 고기를 사오면 내가 반찬을 내주었고, 함께 축구경기도 보고, 생일파티도 하고 말썽이 많은 집이었지만 살면서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


여섯 번째 집 "구옥은 리틀 지옥이고, 어린이공원은 리얼 지옥이다"

여섯 번째 집은 정말 신분상승이다. 이사를 할 당시에 깨끗한 투룸이 내 조건이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은 저 조건과는 반대다. 깨끗하지 않고, 무려 쓰리룸이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언덕에 위치해있다.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마다 숨을 헐떡이며 벨을 누를 정도로. 이번에는 부동산 6곳을 3일 동안 돌아다녔는데 5곳의 부동산에서 같은 집을 보여줬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집이었지만 채광도 좋고 특히나 거실이나 방 사이즈도 참 적당해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충족하는 조건이었는데 단 하나 예산초과.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월세로 나가는 금액을 아껴보려고 했던 의도였는데 계산해보니 월세보다 2-3만원 정도 아낄 수 있었는데 그럴 바에야 다섯 번째 집에 계속 사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 찾아간 부동산에서 마티즈를 타고 올라간 그 집은 차도 힘들어할 정도로 높은 언덕이었다. 마티즈가 언덕을 꾸역꾸역 올라가는데 중개사가 아이고 언덕이.. 언덕이... 어이구..를 반복할 정도였다. 구옥이었지만 리모델링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했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햇빛이 정말 많이 들었다. 거실이 없는 대신 방이 3칸인 것도 좋았고, 베란다 창처럼 아주 큰 창이 있어서 우리집 고양이 양반에게도 안성맞춤이었다. 반려동물 역시 너무 시끄럽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했다.


중개사를 돌려보내고 그 날 저녁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봤다. 옆사람과 대화하기 살짝 어려울 정도로 헐떡였는데 당시 다이어트를 하는 무렵이었기 때문에 건강에 좋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바보. 중개사님 저 이 집으로 할게요. 문자를 보낸 내 손가락을 분지르고 싶다. 집주인은 화통한 성격의 엄마뻘되는 아주머니였고, 이 동네에 집이 열 채가 넘는다고 했다. 대단하십니다요. 집이 갑자기 커져서 들어갈 가구들이 많았다. 식탁을 조립하던 날 화장실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를 마주하고 집을 구석구석을 보니 바퀴벌레 패치가 덕지덕지 붙어있는게 아닌가! 그 길로 집주인에게 말해서 방역업체를 불렀다. 사장님 말로는 여러 나라 출신의 바퀴벌레가 많은 편이라고 했고 외국 바퀴벌레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는 그 녀석들의 사체를 지켜볼 자신이 없어서 근처 카페에서 대기 중이었다. 3개월에 한 번씩 방문하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지금도 바퀴벌레, 거미들이 출몰하고 그 크기와 출몰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힌다. 


이 집의 또 다른 문제는 낡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 중 녹물이 끝판왕이다. 입주하기 전에 청소를 하려고 집에 들렀을 때 처음으로 물을 오랫동안 틀어봤는데 갑자기 색이 변하더니 검은 물을 토해냈다. 오랜만에 써서 그렇겠거니 넘어갔었는데 샤워기 필터와 세면대 필터가 일주일을 버티질 못했다. 노랗다 못해 주황색으로 물들어서 1일 1필터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집주인에게 하소연했더니 화통한 아주머니는 바로 수리기사를 보냈고, 기사님은 구옥이라 너무 오래된 배관은 교체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좌절한 나를 달랠 수 있는 것은 더 크고 굵은 필터뿐. 대신 집주인이 2년치 필터를 한 번에 결제했고, 녹물이 심하기 때문에 남들 2-3개월에 한 번씩 교체할걸 우리집은 1개월에 한 번씩 해야 한다고 했다. 좌절쓰. 대신 세탁기, 씽크대까지 추가로 필터를 달았다. 친구들이 집에 올 때마다 저게 색은 저렇게 흉물스럽지만 필터가 되고 있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비굴하다.


문제의 어린이공원. 예쁜 게 다가 아니다.


아,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또 하나있다. 집 바로 옆에 정말 바로 옆에 어린이공원이 있는데 골목 구조가 그런 것인지 소리가 엄청 크게 울리는데 낮에는 어린이들, 밤에는 비행청소년들의 고성방가에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다. 어린이공원이니까 어린이들의 방문은 참아줄만한데 밤손님들은 익룡소리부터 거친 욕설, 가래침뱉기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리니 저 녀석들 건강하구나 싶다가도 내가 너희의 건강을 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실제로 112에 신고를 수차례 했지만 출입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 답이었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시끄러워 못살겠다고 구청에 신고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마찬가지였다. 훈계로 고쳐질 녀석들이었다면 애초에 방문을 하지 않았을텐데. 요즘 내 최대의 고민거리다. 벌레야 잡으면 그만이고 방역을 하면 참을 수 있는데 타인에게서 오는 불편은 해결할 길이 없다. 밤 9시 30분부터 자정까지는 실컷 떠들다 가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분노가 치밀어서 잠은 커녕 혈압이 상승한다. 쓰다보니 또 열받네. 공원이 있어서 좋겠다는 나의 상상은 산산히 부서졌다. 앞으로 어린이공원 근처의 집은 절대로 계약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 아니라면 반드시 꼭꼭 피해야 한다. 특히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집이라면 더더욱.


10년을 세입자로 살면서 다섯 번의 이사를 했지만 여전히 집 구하는 것은 어렵다. 꼼꼼히 살펴봤다 생각했는데도 모자란 부분은 여전히 존재하고, 변수도 너무 많고, 부동산 용어는 어렵기까지 하다. 지금도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아직 계약기간이 한참 남았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가끔 이사를 가야하는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이 집에 대해 물어볼 때가 있는데 조언을 해주다가도 '내 주제에?'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렇게 집 구하는 것은 세월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나로 인해 성립된다. 앞으로 전세든 월세든 좋은 집을 구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다. 부동산 대란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됐고, 월세에 허덕이는 우리는 그나마 괜찮은 집을 찾기 위해 더 발품을 팔아야 하고, 미끼매물에 몇 번이고 속을 것이다. 이제는 그나마 괜찮은 집도 어제는 있었지만 오늘이면 없다. 내 눈에 괜찮은 집은 남의 눈에도 좋은 법. 월세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괜찮은 집을 선택하는 노하우가 아니라 나쁜 집을 걸러내는 안목을 길러야 하는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안목 역시 세월에 비례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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