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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Sep 02. 2020

남에게 보여지는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모두가 임팩트 있는 인생을 살 필요는 없다.


'놀면 뭐하니?'에서 시작된 부캐 열풍이 음악 차트는 물론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유산슬, 유두래곤, 지미유라는 캐릭터가 유재석이라는 본캐와 맞먹는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인터넷에 부캐를 검색해보면 '직장인들에게도 부캐가 필요하다, 밤 되면 부캐 활동을 시작하는 공무원' 등 부캐를 권장하는 풍토를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사회적인 관념에서 부캐가 부업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 사실 좀 씁쓸하다. 그냥 본래의 내 모습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뿐인데 N잡러라니요! 본업도 힘듭니다요. 배달대행을 부캐라고 칭하는 블로그 글을 보면 절망스럽다.


나에게도 부캐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가 있다. 회사 동료들에게는 사교적인 인싸 캐릭터, 친구들에게는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하는 꼼꼼이 캐릭터, 또 다른 친구들에게는 지켜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연약한 캐릭터.

인스타그램에서는 마케터답게 트렌드에 밝고, 감성적이지만 위트 있는 캐릭터인 척하고, 브런치에서는 ㄱㅁㄹ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감성적이지만 사리분별이 분명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부캐는 굳건한 본캐가 존재해야 성립 가능하다. 유재석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인정받는 유재석이라는 캐릭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가 연기하는 유산슬과 유두래곤이 인기이고, 강단 있고, 할 말은 꼭 하는 이효리의 본캐에 약간의 우악스러움을 넣어서 만든 린다G 부캐에 우리가 열광하는 것처럼 본캐가 얼마나 탄탄한 캐릭터인지에 따라 부캐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다.


나는 어떨까? 나의 부캐는 실패다. 나는 진짜 나라는 본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남에게 보여지길 원하는 모습을 부캐로 만들어내 연기하는데 사실상 이것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연기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회사 동료 앞에서는 이런 캐릭터로 연기하고, 친구들 앞에서는 저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진짜 나와 마주쳤을 때 무너진다. 본캐의 연장선에 있어야 할 부캐 이건만 내 인생에는 부캐만 있고 본캐는 없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김핫피플'이라는 부캐를 만들어 힙한 사람을 연기했다.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어가며 프라이탁, 파타고니아, 포터 등 힙한 브랜드의 제품을 사다 모았다. 마치 이것들이 나를 표현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친한 친구는 버려진 방수천과 안전벨트로 만들어진 때가 꼬질꼬질한 가방을 보고 이걸 돈 주고 샀냐고 물었고, 프라이탁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신념과 가치에 대해 누군가 요약해놓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혀를 끌끌 찼다. 반면에 회사에서 만난 '내 기준 힙한 브랜드'를 애용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나와는 달리 브랜드의 연혁이나 자신이 사용하는 모델의 히스토리를 꿰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아주 핫하고 힙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들과 같은 가방을 메고, 옷을 입으면 내가 그들에게 느낀 존경심 비슷한 것을 남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힙한 브랜드가 나를 말해줄 수 있을까?


배달의 민족 마케터였던 숭님을 알게 된 것은 나를 파타고니아와 프라이탁의 세계로 인도한 전 직장 동료 덕이었다. 그분의 인스타그램에 종종 태그 되어 있길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피드를 보다 숭님이 퇴사를 하고, 출판작가로 데뷔하고, 그녀가 하는 활동들을 꾸준히 염탐하고 있었다. 남에게 보여지는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던 찰나에 숭님의 책 '기록의 쓸모'가 나에게 굉장한 자극이 되었다.


모두에게 나를 인식시킬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저 나와 핏이 맞는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닿으면 되는 것이다.


메모까지 해둔 문장이다. 한 대 쎄게 맞은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내가 여태껏 찾았던 말이고,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남을 따라 하면서도 나도 저 사람처럼 자기다움, 기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모순적인 나에게 그렇게 애써 노력할 필요 없다고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나를 이리저리 변모해가면서 사는 인생은 참 바쁘고 힘들다.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 나를 치장하고 꾸미는 것들이 나를 대변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프라이탁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지 그 브랜드의 가치를 입은 것은 아니다. 진짜로 나를 그것과 동일시하길 원한다면 내가 동경했던 사람들처럼 브랜드의 히스토리를 공부하고, 파생되는 개념들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 또한 본인의 취향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기까지 많은 것을 공부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들과 같은 브랜드를 착용한다는 것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노력 없이 훔쳐오려고 했던 것이지 그 이상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맞지 않는 신발에 발을 욱여넣어 요즘 유행하는 신발을 신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발톱은 터져서 피가 나는데도 '우와 그 신발 사셨네요?' 하며 누군가 신발을 알아봐 주길 기다리고,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으면 시무룩해있다가 '그래 쟤들은 이 브랜드도 모르는 것들이네'하며 상대방을 하대하며 나의 안목을 치켜세우며 자위하는 모습이 결코 내가 원한 모습은 아니었다.


쉽지만 어려운 이 이치를 이해하고 나니 누군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맞춰 나를 연기할 필요도 더 이상 없어졌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부자연스럽게 살았던 내 인생은 그저 과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에 불과했다. 연기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처음 한 행동은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가랑이를 찢어가며 사모았던 것들을 정리하고, 딱 필요한 것만 남겨두었다. 무언가 살 일이 있으면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 나에게 잘 맞는 것, 실용적인 것을 기준으로 구매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줄여나갔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거나 비슷한 것이 있는데도 쿨하고 힙해 보이기 위해서 물건을 샀더라면 '무언가 살 일이 있으면'이라는 전제를 단 것부터 장족의 발전이다.


물건은 그렇다 치고 뼛속까지 박혀있는 마인드를 바꿔야 했다. 잘 보이기 위해서 나를 갉아가며 애쓰는 마음가짐. 물건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일이다. 사실 지금도 문득문득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가 무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예뻐 보이려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쉽지 않은 이 변화의 첫 단계는 '나'를 먼저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편한 것, 내가 행복한 것, 내가 좋은 것을 내 모든 판단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 사람을 대할 때도 겉치레를 줄이고, 거절과 거부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상대방이 나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나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 쪽에서의 거절과 거부에도 익숙해지려고 한다.

예전에는 누군가 내 부탁을 거절하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내가 뭘 잘못했나'였는데 지금은 무례하지만 않다면 '그렇구나'하고 넘기게 된다.

바빠 죽겠는데 상대방의 부탁에 내 시간을 줄여서까지 완벽하게 정리하고, 칭찬받으려고 기다렸다면 지금은 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거절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미룬다. 내 행동이 갑자기 변했다고 나를 멀리하거나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딱 거기까지인 것이다. 더 이상 관계를 억지로 이어갈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내 인생을 투영할 필요는 없다. 내 스스로 나와 나의 인생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도 꼭 정의를 내릴 필요는 없다. 어쩌면 평생에 걸친 숙제와도 같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 숙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면 된다. 나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임팩트 있는 인생을 살 필요는 없으니까.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소름 돋게 유튜브 뮤직에서 이 글과 딱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로시의 Stars.


아무것도 아닌 게 내겐 어려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울고 싶을 땐 울어버리고
웃고 싶지 않을 때는 웃지 마
밤하늘에다 나를 난 그려봐
내가 만드는 나의 별자리
아무도 지우지 못할 나만의 빛으로

반은 거짓말 절반은 진짜 말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나
잘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
꼭 안아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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