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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Sep 17. 2020

작지만 강한 힘 '리추얼'

나만의 루틴 만들기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불면증 환자였다. 까만 밤이 푸른 새벽을 맞이할 때쯤 잠들어서 천근 같은 눈꺼풀을 뜨고, 만근 같은 몸을 일으킨다. 잠드는 시간은 얼추 비슷해도 일어나는 시간에는 대중이 없었다. 지금은 회사를 쉬고 있지만 일을 할 때도 내 불면증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몇 해 전, 추천받은 수면클리닉에서 의사 선생님과 첫 대면하는 날, 내 수면 패턴과 문진표를 보고는 '그동안 참 고생이 많으셨겠어요'라는 한 마디에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선생님은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휴지를 건네주셨고 나는 한참을 울고 나서야 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처럼 잠 못 들어 생활이 망가진 사람이 그렇게나 많다는 거겠지?


한 달 전쯤일까 늘 그렇듯이 잠이 오지 않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피곤한 눈을 벅벅 문지르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안타까워서 나 스스로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 날 낮에 읽은 책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의 변화라는 최초의 진정한 변화가 있어야
다른 변화가 뒤따르기 시작한다.
세상 무엇도 인간이 변하기 전에는 변하지 않고,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매일매일의 '단련'의 결과다.
- 아무튼, 메모 / 정혜윤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을 포함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망은 항상 있었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현실로부터 도망가기 바빴고, 사실 변화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것도 없었다. 노력 없이 결과만 바라 왔으니 내 잠결이 곱지 않은 것은 내 탓이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나만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 나 자신을 멱살 잡아 하드캐리하며 배우고 익혔다. 한 달이 짧다면 짧지만 이제 몸에 익숙해졌고, 아침이 이렇게나 상쾌할 수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기록해보려고 한다.





1. 스마트폰을 멀리한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회사나 학교 지각은 물론 명절 고향에 내려가는 기차도 놓쳐봤을 것이고, 너는 잠 때문에 언젠가 사달이 날 거라는 말 한 번쯤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 이미 뉴스에서도 많이 다뤄온 부분이지만 아마 몇 번 시도해보고 말았을 방법일 것이다. 처음엔 아예 방 밖에 두거나 최대한 멀리 떨어뜨렸는데 그럼 또 옆에 없다는 불안함때문에 신경이 곤두서게 되더라. 그래서 머리맡에 두되 침대에 누운 이상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보든 안보든 잠이 들지 않았다. 사방에 어두우니 지금이 몇 시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고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가는 것 같아서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이 들 때까지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동도 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아야 한다. 원래 엎드려 자면서 베개 밑에 손을 넣어두고 자는 걸 좋아했었는데 수면클리닉에서도 좋지 않은 자세로 잠들면 오래 유지하기 힘들어 더 뒤척이게 된다고 했었다. 침대 위를 이리저리 굴러가면서 가장 편안한 스팟과 베개 위치와 높이를 찾고, 포근한 이불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 딱 일주일을 뒤척이다 2주째부터는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고 눈을 감고 기다렸더니 어느샌가 잠에 빠져 들었다.


출근을 하거나 약속이 있는 날이면 스마트폰 알람을 기상 마지노선에 맞춰 3-5분 간격으로 10개 이상 맞춰놓고 살아온 나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김없이 알람을 듣고 일어난 적은 없다. 알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꼭 일어났으면 하는 시간에 딱 하나의 알람을 맞추고, 늘 차고 다니는 스마트워치도 딱 하나만 맞춰놓았다. 사실 일찍 일어나는 건 일찍 자는 것보다는 쉬웠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게 된다는 만고의 진리. 


한 달 동안 꾸준히 실행해본 결과 12시 반 정도에 잠자리에 들면 1시 전에는 스르르 잠에 들어 8시가 조금 넘으면 눈을 뜬다. 사실 자는 시간만 놓고 보면 많이 자는 편인 것 같은데 어제는 일이 있어서 1시 반쯤 침대에 누웠는데 아침 6시에 귀신같이 눈이 번쩍 떠졌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오늘 써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물론 이 내용들은 '숙면 방법'이라고 검색만 해도 나오는 것들이라 우리는 분명 몇 번의 시도에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나 역시 숱한 밤을 그렇게 흘려보냈는데 딱 2주만 과학의 힘을 믿어보자.



2. 눈뜨면 할 일을 정해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니 아침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눈을 떠도 한참을 침대에 누워있거나 기지개를 켜고 다시 바닥에 눕기 일쑤였는데 아침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구나를 처음 느껴봤다. 그래서 아침을 좀 더 아침스럽게 보내기 위해서 모닝 루틴을 만들었다. 이름이 거창할 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것을 정해두고 실천한다. 대신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가령 침구 정리일 수도 있고,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기지개보다는 격하고 스트레칭보다는 가볍게 몸을 풀고,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그리고 유산균과 ABC주스를 또 마신다. 


아침에 뭔가 정해져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수고스러운 활동이다. 대신 내가 그 일을 완벽하게 해냈을 때 고작 물 마시기일지라도 그것에서 오는 성취감이 어마어마하다. 마음만 그럴까? 


불쾌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쾌변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인데 한 달간의 모닝 루틴 덕분에 요즘은 1일 1응가를 실천하며, 화장실 가는 일이 무섭지 않다. 장기전을 치르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원샷 원킬이니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안 되는 사람들은 특히 주변이 너저분한 편이다. 모두가 그렇다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랬다. 정돈되어 있는 것 같지만 어지럽다. 심신이 피곤하고 쳐져있으니 청소와는 담을 쌓아두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다음 달 나의 모닝 루틴에는 부직포 밀대로 바닥 쓰는 일을 추가할 생각이다. 



3. 가볍게 움직인다.



불면증을 심하게 앓았을 때는 자는 동안에도 피로와의 싸움을 치르느라 언제나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마냥 욱신거렸다. 그래서 깨어있을 때도 시체 같았다. 그나마 회사를 다닐 때는 출퇴근도 하고, 일을 해야 하니 움직거리기라도 했는데 집에만 있자니 잠을 자지 않아도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놈의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또 보고 그러다 잠이 오면 자고, 배가 고프면 먹었다. 대중없이 살다 보니 낮 시간에도 나만의 규칙이 필요했다. 일단은 누워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최대한 움직이기로 했다. 몸이 아니면 손가락이라도. 그래서 브런치에 어떤 글을 올릴지 고민하게 되었지만서도.


병원에서도 하루에 8천보 정도를 걷는 것을 추천했다. 집 근처 하천길을 따라 걷거나 시장에 간다거나 카페에 가서 글을 쓰기도 했다. 일단 집에만 있으면 행동반경이 좁아져서 지루해지고, 그러면 늘어지기 십상이다.


낮과 저녁시간을 활기차게 보낼수록 하루에 대한 미련이 없기 때문에 수면 역시 어렵지 않게 된다. 줄기차게 야근과 철야를 할 때는 내 하루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해 늦게 퇴근해도 꼭 나만의 시간을 보낸답시고 뭐라도 하고 잤었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활기차게'다. 힘들게가 아니고. 


그래서 퇴근 후 운동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데 잠들기 전 두세 시간 전에는 모든 운동을 종료해야 한다. 운동이 취침시간에 가까울수록 우리의 신체는 깨어있고 싶고, 깨어져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다이어트 명목으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밤 10시가 넘어 시작해서 11시까지 운동을 하고, 씻고 잠자리에 들면 내 몸은 아직도 깨어있기 때문에 더욱 잠들기가 어려웠다. 몸도 쉴 준비를 시켜줘야 한다.



4. 잠자기 전 모든 일을 끝낸다.



잠자리에 들 시간을 정해두고, 그전에 해야 할 일을 되도록이면 끝내는 것이 좋다. 성격이 깔끔한 사람이라면 쌓여있는 설거지, 분리되지 않은 재활용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서 누워도 누운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들기 전에 오늘 해야 할 것을 반드시 처리하는 척을 한다. 내가 잠들 수 있을 만큼 합리화하도록 한다.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만발의 준비를 마친다. 


나는 청결 같은 것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이라 설거지, 청소 거리가 쌓여있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데 반려묘가 있기 때문에 고양이 케어를 완벽하게 끝내지 않으면 찜찜한 마음이 들어 두세 번이고 확인하게 된다. 사료도 챙겨놓고, 화장실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친구가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체크하고, 방마다 돌아다니며 창문을 점검한다. 환기가 필요한 곳은 적당히 열어두고, 요즘은 일교차가 커서 새벽에 춥기 때문에 쌀쌀하지 않도록 창문을 아주 살짝만 열어둔다. 그리고는 고양이가 날뛰어서 숙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한참을 쓰다듬어주고 침대로 돌아온다. 같이 잘 준비가 된 녀석도 침대에 올라와 함께 잠든다.


숙면을 위해서 데운 우유나 차를 마신다거나 명상을 한다거나 스마트폰 대신 책을 본다거나 그런 건 하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1시간~30분 전에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제 막 루틴을 만들려고 노력 중인 사람이라면 스마트폰을 멀리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니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최대한 열심히 해본다. 대신 막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게임이나 생각을 많이 필요로 하는 활동은 삼간다. 게임은 한 판만 더, 이번 판만, 다음 판만 깨고 등등 프로숙면러가 되는 과정에 가장 큰 방해요인이 된다. 설령 게임을 딱 끊어내고 이불을 덮는다 해도 눈 앞에 그려지는 게임 속 화면을 무시할 수 있는 담력이 우리에게 아직은 없다. 그러니 가볍게 볼 수 있는 있는 것들이나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 휘발성 콘텐츠를 보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에 도달한다.


편안하게 잠자고 일어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울 일인가 싶지만 저 쉬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은 정말 아주 많이 고통스럽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 잘 자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낮동안 쌓인 피로를 해소하고, 독소를 배출하고, 스트레스를 녹이고, 심지어 칼로리도 소모한다. 그래서 다이어터에게 숙면은 두 번째 운동이라는 말도 있다. 


지금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면 일단 오늘 밤 스마트폰부터 조금씩 멀리 해보는 건 어떨까? 화려한 콘텐츠로 눈과 귀는 사로잡을지언정 심장과 뇌는 점점 우둔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야기해주자. 너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오늘부터 모든 사람의 밤이 꿀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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