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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Nov 15. 2020

암 걸린다는 말은 이제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주말 친구의 동료들과 캠핑을 떠났다. 서울은 미세먼지가 경고에 이르는 수준이라 한강을 끼고 가는 길이 답답했는데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로 접어드니 같은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하늘이 푸르렀다. 들이마신 상쾌한 바람이 오장육부를 깨우는 기분이었다.


점심으로 올 겨울 첫 방어회를 먹었고, 이른 저녁부터 목살에 삼겹살까지 열심히 구워 먹고, 와인을 따라서 타들어가는 장작 앞에 둘러앉았다. 쫀드기도 구워 먹고, 지난주 캠핑에서 실패한 추억의 달고나 만들기도 몇 번 연습했더니 아주 성공적이었다. 


친구의 동료가 챙겨 온 마시멜로를 나무젓가락 꽂아 장작불에 구워 먹었는데 그 또한 꿀맛이었다. 오늘 하루가 완벽했다. 실수로 까맣게 그을린 마시멜로를 보기 전까지는. 엄청 새카맣게 타버린 마시멜로를 보며 다들 그걸 어떻게 먹냐며 깔깔거리던 찰나에 내 입에서 '어유, 암 걸리겠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거멓게 그을린 음식을 먹을 때 흔히들 '탄 것 먹으면 암 걸린다'는 말을 하는데 그 날 캠핑은 가족이 암투병 중인 동료가 있던 자리였다.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 웃고 떠드는 사이 크지 않은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라 모두가 들은 건지 아니면 아무도 못 들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말을 뱉고 0.1초 만에 내가 말도 안 되는 실언을 한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계속 가로저으면서 속으로 미쳤다 미쳤어를 되뇌었다.


시뻘건 장작처럼 내 마음이 타들어갔다. 들었을까? 들었으면 어떡하지? 사과를 해야 할까? 사과했는데 못 들은 거면? 그럼 더 어색해지는 거 아닐까? 실수라고 포장하고 싶지만 이런 죄스러운 실수가 또 어디 있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만 바라보면서 애꿎은 손톱만 뜯어댔다.


시끌시끌했던 분위기와 너저분한 자리를 환기시키면서 새로운 와인을 땄고, 어울리는 안주를 찾다 어묵탕을 끓였다. 아무 말 없이 물을 붓고 어묵을 넣어 휘휘 젓고 있었는데 동료가 다가와 '언니언니 이 와인 좀 마셔보세요. 너무 맛있어요 진짜' 하면서 와인이 담긴 컵을 건네어주었다.


못 들은 건가? 못 들은 척하는 걸까? 들었지만 괜찮다는 모션일까? 마음이 너무 불편했지만 결국 나는 다음 날 헤어질 때까지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도 생각났다. 미쳤다 미쳤어. 


생각해보니 이런 난감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아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유치원 선생님을 해보라는 주변 사람 말에 '박봉에 힘들어서 못해요'라고 대답했는데 그 자리에 유치원 선생님이 있었고, 얼마 전에 친척이 유명을 달리한 친구와 카톡에서 '죽겠다'는 표현을 쓴 적도 있다. 아, 나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었구나.


샤워를 끝내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토너를 바르고, 머리를 말리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상처 받은 사람이 있겠구나. 친하다는 혹은 어색해질까 봐 올바르지 않은 표현이라 지적하지 못하고 속으로 상처 받고, 원망도 했을 것이며, 어쩌면 내가 싫어졌을 수도 있고, 나를 만날 때마다 뾰족했던 그 날의 감정을 되새김질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내뱉은 '암 걸리겠다'는 말이 진짜 병력과 관련된 말이었다면 요즘 시대 사람들은 흔하게 짜증이 나거나, 짜증 나게 하는 것들을 발암, 암 유발, 암 걸린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진짜 그 고통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뼈아픈 말일지 감히 예상할 수도 없다. 분명 이런 표현 말고도 우리가 실수하고 있는 말이 많을 것 같다. 


나이가 조금씩 들수록 편하게 잘 지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반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자리는 줄어들고. 오히려 새로운 사람 앞에서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언행을 조금 조심했던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다. 나 자신에게 실망한 하루였다. 


사과를 할 용기가 없다. 다음에 만나면 손을 꼭 잡아줄까? 그럼 내 마음이 전해질까? 아니, 이미 쏟아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 상처를 줬으니 나도 인정하고 미안함의 말을 전해야지. 나만 잊어버리고 편하게 살 수는 없지.


표현과 행동에 조금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편하자고 쓰는 표현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아물지 않는 생채기를 내고, 이미 따가운 마음에 더 큰 흠집을 낼 수도 있으니.


그리고 참고로 탄 음식을 먹어서 암에 걸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앞으로 지나가는 말로라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가 암을 너무 오해하고 있었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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