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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Jun 02. 2020

인스타그램 친구 추천에 첫사랑이 떴다.


회원님을 위한 추천.

리스트에서 영어로 적힌 이름 몇 글자를 보고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10글자가 조금 넘는 영어를 보고 순식간에 심장이 지하 1층까지 떨어졌다 다시 올라와 멈췄다.

인스타그램 이 나쁜놈들. 잊고 살았는데 왜 추천에 저 사람을 띄워서 내 심장 위치를 알게 만드냐.


평생을 살면서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다. 저 애가.

그렇게 많이 좋아한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해마다 한 두 번 정도는 늘 생각한다. 그 때 내가 먼저 연락했으면 어땠을까? 다시 안부를 묻게 되었을 때 꾸준히 연락했으면 어땠을까? 늘 과거를 후회하고 그 때 내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덜컹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읽고있던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책도 접고, 커피를 마실 정신도 없이 지금 이 감정을 적어보려한다.



저 애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 혜원이 고향에 돌아와 보낸 사계절의 느릿함, 따뜻함으로 봄날 새 순이 돋듯이 천천히 성장한다는 그런 이야기. 계절에 어울리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고, 요리에 필요한 재료는 직접 수확한다. 잔잔하지만 힘있는 영화라 개봉 이후 몇 번이나 더 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저 애가 생각난다. 류준열을 살짝 닮아서일까? 아니 영화 속에서 그린 혜원과 재하의 관계가 우리와 비슷해서. 오늘부터 1일 이런 말은 없었지만 두 사람 마음 한 켠에서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파지직 불꽃튀는 순간은 없었지만 시작인지도 모른채 어색하게 마지막을 본 것이다.

근데 나는 이런 생각을 글로 적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진심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든게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고, 내가 저 애의 이름을 읽는 것만으로도 심장 떨려하는 것처럼 저 애는 그렇지 않을 확률이 조금 더 클 것 같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크다고 확신하기에.



대학 동기인 그 애는 또래들보다 성숙했고, 사람들을 관찰하는걸 즐겨했고,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 대학생들이 으레 그렇듯이 학교가 끝나면 술을 마시고 네 발로 기어서 집에 들어가는데 그 애는 늘 차분했고,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하는지 눈에 뻔히 보이는 그런 친구였다. 같은 무리에 있는 여자아이를 오랫동안 좋아했고, 둘은 결국 사귀게 되었지만 그 애가 군대에 간 뒤로 헤어졌다. 처음부터 좋아했던건 아니었는데 볼수록 괜찮은 사람같았다. 애석하게도 친구의 전남친이었지만.


휴가를 나온 그 애와 겨울 바닷가를 거닐며 노래를 불렀고, 우리 집 앞에서 키스를 했다.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고 너는 참 좋은 애라고 말했지만 사실 믿지 않았다. 진심이길 바랬지. 그 날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뭘 입고 있었는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손목을 붙들려 빌라 뒷편으로 가는 순간을 잊지 않았다. 너무 두꺼운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차가운 그 애의 손이 옷 안으로 들어왔을 때 거칠거칠한 손이 느껴져서 핸드크림을 사서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 애와 밤을 보냈어야 했을까? 그럼 너와 나의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룻밤 불장난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너는 들었을까? 나는 언제부터 너를 이렇게나 마음에 묻어두고 있었을까? 첫사랑이었다.

 

부대로 복귀한 그 애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이 왔다. 생활관 지도같은 종이였는데 이면지로 쓰는걸 걸리면 잡혀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뒷면을 빼곡하게 채웠더라. 글씨도 참 예뻤다. 

부끄러웠다고 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했다. 이름이 예쁘다고도 했다. 그치만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천천히..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너의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 팔로우하는 것도 머뭇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계정을 계속 바꾸는건지 몇 년에 한 번씩 이렇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지난 번엔 그 애가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해서 두어번 연락을 했었다. 역시나 내가 먼저. 잘 지내냐는 어색한 물음도 없었고 대뜸 고양이 간식을 선물했다. 관심없는 척. 고양이가 귀여워서 선물하는 척. 어떻게 지내니, 만나는 사람은 있니 물어보고 싶은게 참 많았지만 애써 참았다. 관심없는 척. 고양이가 귀여워서 연락한 척. 2018년이었다. 


2020년 5월. 인스타그램 친구 추천 한 줄로 오늘 하루가 뒤엉켰다. 해야할 일을 전혀 하지 못했다.

사진찍는 걸 유독 좋아했는데 지금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구나. 축구는 여전히 열심히 하는구나. 네 친구들도 그대로구나. 너도 여전히 웃는게 예쁘구나. 나는 이래저래 늙고 있는데 왜 너만 그대로인거 같지? 왜 내가 좋아하던 너는 변한게 없니? 나는 마음도 늙었단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배꼽까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피를 내뿜고 다시 머금는게 느껴지는 것 같다. 마음은 늙었어도 심장은 아직 쌩쌩하구나.


군대에서 보낸 편지 중에 본인이 찍은 사진을 같이 보내준 적이 있다. 당시에 유행했던 한 장에 두 컷이 담기는 그런 사진이었는데 하늘과 바다가 보이는 그런 사진이었다. 윤슬이 예뻤다.

'일요일 아침이었지' 사진 뒷면에 반듯한 너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그래 너는 참 일요일 아침같은 사람이야. 반짝거려서 눈부신데 아쉽고 손에 잡히지 않고 흘러가버리지.


네이트 판에서 보면 이런 글의 마무리는 그래서 저 쟤랑 올해 결혼해요, 저때 친구였는데 지금은 남편이라고 불러요. 이렇던데 나는 여전히 그 애 저 애 남처럼 너를 부르는구나. 그 때 나는 너를 좋아했던게 분명한데 지금 나는 너를 좋아하는걸까?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일까? 일요일 아침같아서? 그래서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해도될까? 


근데 말이야. 나는 또 상처받을 것 같아서 하지 않을 생각이야.

근데 말이야. 잠시 본 것 뿐인데 니 계정을 벌써 외워버린 것 같아. 

나를 어떻게 하면 좋겠니. 첫사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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