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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Aug 24. 2023

나로 인해, 엄마의 행복이 밀물처럼 차오르던 순간

글을 위한 필사 <슬픔의 방문, 장일호>


엄마는 지금도 '남의 주방'에서 일한다. 제 한 몸이 가진 것이 전부인 사람에게 건강 문제는 생계에 앞설 수 없는 부차적 문제가 된다. 따지고 보면 엄마는 늘 어딘가 아팠다. 불이나 기름에 데거나, 대형 솥을 반복적으로 옮기는 동안 생기는 근육통을 달고 살았다. 그런 상처는 연고와 밴드와 파스 따위로 임시 처방하면 그만이었다. 엄마의 몸에 오래 기대 살았던 나는 해외 출장이나 여행 갈 때면 그 지역의 유명하다는 파스 제품을 종류와 크기별로 사다 나르곤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엄마의 몸은 파스와 연고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에서 무너지곤 했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진행이라기엔 변화가 급격했다. 한 군데가 아프기 시작하니, 연쇄적으로 고장 났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란 인터넷으로 대형 병원의 진료나 수술 일정을 예약하고, 엄마 혼자 복잡하고 미로 같은 병원을 헤매지 않도록 동행하는 일이다. 수술 일정을 잡고 나오던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정말 아이를 낳지 않을 거냐고. 지겹도록 듣고 답했던 질문 앞에서 나는 입을 닫았다. 엄마가 체념한 듯 혼잣말을 했다. "너는 딸도 없고 불쌍하다." 그날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이 아주 좋다고. 그건 엄마가 나로 인해 불행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장일호 <슬픔의 방문_그렇게까지는 원하지 않는 삶에 대하여>





불과 삼 년 전까지 엄마도 남의 주방에서 일했다. 새벽같이 출근해 이른 저녁까지 허리가 휘도록 설거지와 뽀얀 설렁탕을 끓였다. 좀체 식지 않는 뚝배기에 팔을 데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점점 가늘어지는 다리에는 형편없는 뜸 자국이 늘었다. 파스에 냄새가 없었다면, 그것은 영락없이 엄마의 피부로 불렸을 것이었다. 엄마는 늙어가고 있었고, 몸 쓰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자신과 배움의 문턱을 막은 외할머니를 일평생 미워했다. 그 시절에는 '첫째 딸은 살림 밑천'이란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고, 그 아무렇지 않음은 가족과 동생들을 위해 '희생해도 좋을 존재'로 수많은 첫째 딸들을 만들어 냈다. 나의 외할머니 또한 그런 삶을 살았겠지, 왜 아니겠는가.


​슬픔의 방문을 읽으며 작가에게서 나를, 작가의 가족에서 우리 가족을 자주 만났다.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어지럼증을 일으켰고, 때때로 숨을 몰아쉬게 했다. 어떤 슬픔은 도착과 동시에 어떻게든 틈을 파고들어, 결코 사라지거나 옅어지지 않는다. 징글징글하고도 몸서리치게 싫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 오르는 기분. 하루하고 절반의 시간이 지났고, 책장을 덮으며. '나는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않게 될까. 내가 쓰는 이야기는 또 어떤 누구에게로 가, 또 다른 나를 행동하게 할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책의 등을 쓰다듬었다.


​나의 엄마 춘옥도 비슷한 말을 자주 했다. "나는 네가 있어 좋은데, 너는 너 같은 딸이 없어서 걱정이다." 나 또한 그 말이 좋아서, 엄마의 행복이 나로 인해 밀물처럼 차오르던 그 순간들을 종종 일기로 썼다. 물론 이 말은 아주 가끔 "저 같은 딸을 낳아봐야 엄마 마음을 안다"로 회귀하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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