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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Aug 25. 2023

여름손님

글을 위한 필사 <작고 기특한 불행, 오지윤>


매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는데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매미들은 나무에서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추락해 땅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7년 동안 몸집을 키우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나온다. 7년 만에 처음 빛을 보는 순간, 그마저도 대부분은 천적을 피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 살아남은 놈들만이 나무 위로 올라가 날개를 틔우고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2주 동안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해 울고, 또 울고 또 우는 거다. 암컷은 울 수도 없다. 소리를 만들어 내는 기관이 있을 자리에 산란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7년을 기다려서 한 번 울지도 못하고 그저 알을 낳고 죽는다. 존재를 계속 존재하게 하기 위해. 매미를 처연하게 여겼던 것은 오만이었다. 고귀하고 아름답다. 사랑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어둠 속에서 기다린다니! 매미들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고 있다. 인간처럼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종족을 계속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세상을 떠난다. 세상에 온 이유를 명확히 알기에 고민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신념이다! 명확한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하는 보기 드문 위인들처럼, 매미들도 7년의 암흑기를 보내고 신념의 실현과 함께 흙으로 돌아간다. 사랑이라는 신념을 위해 태어나고 죽는 삶. 후회 없는 삶이다. 유리창에 부딪혀 힘을 잃어가던 그 매미도 아마 담담한 마음이었겠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나는 꿈을 이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페에 앉아 있는 인간들을 제 생의 마지막 풍경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의 노래방 18번인 심수봉의 <백반 송이 장미>를 떠올린다.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하러 세상에 왔다 가는 매미들. 딱히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지도 않고, 뜨겁게 사랑할 애인도 없는 나는 매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나도 내 삶이 끝나는 날, 아름다운 별나라로 갈 수 있을까.


오지윤 <작고 기특한 불행_펑크족의 신념>




밥을 먹으러 가는 길, 요즘 날씨에 대한 사뭇 진지한 대화가 오갈 무렵 채 떨구지 못한 버찌를 주렁주렁 매단 벚나무를 지나고 있을 때, 매미가 울었다. 매미가 우는 건 여름이 왔다는 것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댈 매미와 함께 여름의 접점으로 내달릴 일만 남았다는 것인데, 여름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내가 저 혼자 성질 급하게 깨어나 울고 있는 매미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약간의 흥분과 감탄사를 섞어 "어머! 올해 첫 매미예요." 홀로 우는 매미와 사람들을 향해 호들갑 떨며 매미를 반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큐멘터리도 보지 않았고, 매미를 여름의 산물쯤으로만 생각했던 터라 매미가 울면 울수록 '지긋지긋하게 쨍한 여름'을 탓하며 질색했고, 굉음을 있는 힘껏 발사하는 매미를 시끄러운 존재로만 생각했으며, 세로로 크고 길쭉하게 난 날개가 같은 절지류인 잠자리의 그것보다 단단해 봬, 기겁하다가 큰 몸집에 두 번 압도당하여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더군다나 매미의 실물을 영접할 일은 계절의 끝 무렵에나 힘을 잃어 땅으로 곤두박질친 사체로 발견하는 것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으으' 잇새로 흘러나오는 짧은 신음과 함께 고개를 돌리기 일쑤라 매미에 대한 별도의 생각이나 애정이랄 것이 전혀 없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책 <작고 기특한 불행의 '펑크족의 신념'> 챕터를 읽기 전까지 매미는 그저 크고 징그럽고 덥고 약간은 불쾌한 존재였다.

처음부터 마음껏 웃으라고 써놓은 글인 줄 알고 깔깔거리다 갈 곳 잃은 웃음이 매미만큼 처연하게 다가왔던 그날의 기억이 겨울을 건너, 여름의 초입 우렁찬 매미 소리와 함께 내게로 왔다. 나는 이제 매미의 서사와 에세이가 만난 꿀조합을 알고 있고, 희대의 펑크족 매미의 삶과 심심하기만 한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세를 고쳐 앉고,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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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얘기는 산란관 때문에 ’ 암컷 매미는 7년 만에 깨어나 울지도 못한다'로 시작하여 삼천포로 빠지는가 싶더니 말미에는 모기는 ‘암컷만 문다더라’로 점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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