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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Aug 26. 2023

몽 카페, 아인슈페너

글을 위한 필사 <몽카페, 신유진>


한가로운 아침, 우리는 차가운 공기와 빵의 온기를 느끼며 낯선 동네를 걷는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고 멀리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이유 없는 비명, 작은 악단의 유쾌한 연주는 우리가 걷고 있는 이 풍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BGM이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곳으로, 길이 좁아지는 곳으로 향한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나 작은 카페 하나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가진 환한 인상처럼 온기가 있는 공간. 작은 장식품들 위로 시커먼 먼지가 쌓여 있지 않고, 창이 크지 않지만 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너끈히 담아내는 곳. 수줍은 미소로 맞이하는 주인이 있다면 좋겠지만, 하루에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닳아진 미소라면 차라리 무표정한 얼굴이 좋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미소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일이 아닌가. 투박한 말투와 표정이어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아도 자신의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매일 그가 매만지는 카페에 갈 수 있다. 온기가 있는 카페의 가장자리에 앉는다. 작고 깨끗한 카페다. 우리는 어젯밤에 본 영화 이야기나 서로 잘 알고 있는 친구의 연애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심각하거나 어려운 주제는 오늘의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내일 일이라면 주말에 요리할 라타투이 정도가 적당하겠다. 말하자면 라타투이에 주키니 호박을 넣을 때 껍질을 벗겨야 하는지 아닌지, 그런 정도의 논쟁. 분명하고 확실한 미래가 거기, 라타투이에 있다. 그 이상은 알 수도 없으며 생각할 이유도 없다.


신유진 <몽 카페_우리를 아는 사람도 없고, 우리가 아는 사람도 없는>





두세 사람 정도면 꽉 찰 것 같은 가운데 길을 제외하면 양옆으로 작은 가게들이 틈 하나 없이 와다다 붙어 있어 있는 서촌은 내가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었다. 그때 서촌은 모서리처럼 튀어나온 곳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들어차 있었다. 작은 골목길이 주는 안온함, 익숙한 풍경 위로 물처럼 흐르는 정서는 서촌이 가진 매력이었다. 가운데 길로 마주 오는 누군가를 피해 모로 걷다 보면 철물점을 경계로 횡단보도 건너에 Project 29가 있었다. 앉았을 때 각도와 지면에 닿는 발의 위치까지 안성맞춤인 의자가 있어 온종일 앉아 있고 싶었고, 커피보다는 진저 밀크티나 샹그리아가 맛있었다. 벽면 한쪽 가득 월넛 키 큰 책장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조도 낮은 조명은 영롱한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안쪽 자리가 없어 창가 쪽으로 난 일자 테이블에 앉으면 길 위의 사람들과 종종 눈이 마주쳐 고개를 돌렸던 기억이나, 뜨거운  햇살에 안 그래도 못난 얼굴에 주름이 지곤 했었다. 나는 이 카페를 좋아했다. 옥이네나 밥플러스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항상 29에 들렀다. 아르바이트생과도 친해져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가까워졌는데, 어느 주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29로 갔을 때, 그 카페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


도장을 꽉 채운 쿠폰도 2장이나 있고, 반을 채우다 만 쿠폰도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그때의 허망함은 쓰지 못한 쿠폰 2장도 아니었고, 채우지 못한 반쪽짜리 쿠폰도 아니었다. 더 이상 진저 밀크티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 폭신한 의자에 두 번 다시 등을 기댈 수 없다는 것이었다. ​


괜찮아, 커피가 맛있는 집들은 많으니까.

괜찮아, 진저 밀크티는... 어디서 만나게 되겠지...​


책에서 몽 카페를 이렇게 설명한다. <<'몽 카페'(Mon cafe, 나의 카페)라 불렀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만의 카페, 자신만의 빵집, 자신만의 술집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내게도 언젠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들이 있었다. 시간을 지체할 이유도, 가지 않을 이유도 없는 곳들이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것들의 추억을 주무르다 보면 소환되는 것이 어디 진저 밀크티의 풍미뿐인가,


​요즘 주말이 되면 익숙한 풍경을 마주하고 커피를 만들어 먹는다. 악의 없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BGM 삼아, 분리수거 공병 소리가 끼어드는 잡음마저 평화로운 새 아침에 마시는 달콤하고 폭신한 생크림 폼에 입술을 묻고, 쌉싸름한 커피가 기어코 혀에 감길 때, 진짜 휴일이 온다. 파리 사람들이 말하는 몽 카페가 가장 익숙한 모습으로 내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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