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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03. 2023

하오에 되새겨보는 마음들

글을 위한 필사 <창문 너머 어렴풋이, 신유진>


엄마가 왔다 가고 일주일 후, 다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를 보러 요양원에 갔다가 코로나가 심해져서 못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엄마 괜찮아?" 물었더니, "괜찮아. 할머니 계신 창가 쪽 한 바퀴 돌고 왔어"라고 엄마가 대답했다. "그게 뭐야?" "엄마가 거기 한 바퀴 돌고 간 거 할머니가 아니까 괜찮아. 할머니가 내 딸이 지나갔구나, 하셨을 거야." "더 아쉽기만 하겠다." "엄마는 엄마니까 알아. 우리 엄마도 그거면 됐다고 하셨을 거야." "엄마...." "유진아, 너도 나중에 엄마 지내는 곳 가끔 지나가 줘. 그럼 엄마는 우리 딸이 저기 지나가는구나, 하면서 지낼 수 있으니까." 나는 전화를 끊고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마르땅은 내 울음에 익숙하다는 듯 가만히 나를 달래며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 슬픔이 내는 소리네."


신유진 <창문 너머 어렴풋이_엄마의 창문>





모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 마음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그려본 그림을 문장으로 완성하기 위해, 빈칸을 채우기 위해, 나를 해석하기 위해. 한 번도 내게 매달린 적 없었던 것처럼, 첫 문장을 고르고 다듬는다. 단어를 수집하고 나열하며, 이 세계와 저 세계의 나를 관통하며. 철저하게 계산하고, 뻔한 실수를 반복한다. 글을 짓는 일이란 반복된 패턴과 색의 교란 속에서 희미하고 투명해지는 것. 어깨너머 세상을 갈망하는 것. 너무나 좋아해 몇 번이고 리플레이했던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마지막 대사 "우리가 믿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내가 믿고 싶은 진실 너머 거짓, 보고 싶고 보게 될 모든 것, 그렇게 완성된 내가 하고 싶은 것. 그 끝에 매달린 것이 미끄덩한 눈물인지, 입꼬리에 걸린 달 인지. 그도 아니면, 영글지 못한 홍시처럼 붉다만 마음인지. 지켜볼 일. 모두가 각자의 세계로 진입한 여분의 점심시간, 옅은 불빛에 기대어 포스트잇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읽어가다 책 속에서 길을 잃었고 되돌아가 다시 시작된 이야기에 눈물이 달려와 안긴다. 나는 결국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꺼내놓지 못한 슬픔이 어깨동무하는 하오에 되새겨보는 글 짓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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