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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02. 2023

이 또한 글이 되어 오겠지

글을 위한 필사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김종관>


후회는 통증과 닮았다.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 후회가 조용히 나타난다. 어둠 속에 눈을 떠서는 내 위로 조용히 가라앉고 견딜 수 없게 나를 누른다. 아마도 견딜 방법이 없을 것 같을 때 나는 후회를 견디게 된다. 후회는 조용히 물러서고. 난 다시 나의 시간을 산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난 나의 시계를 다시 나의 망가진 지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좋은 선택을 한다. 어둠 속의 후회를 거둬들이는 것이다. 누군가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지만 결국은 나의 안식을 위한 일이다.


김종관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_독수리>





​생각은 어느 악덕 업주의 공장처럼 연중무휴로 팽팽 돌았다. 후회하며 후회를 생산하는 일. 내가 될 수 없는 것, 가지지 못한 것에 마음 뺏기는 일.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것들에 파르르 떨며, 별것으로 만드는 유별남. 농담 이랬는데, 내 감정은 농담으로 받을 수 없어 발끈한 마음. 내 마음도 모르는 주제에 타인의 마음이 궁금해. 명탐정 뺨치는 추리를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궁색한 줄타기를 하는 동안 밤이 하얗게 가버렸다. 안식은 물 건너갔지만 이 또한 언젠가 글 되어, 안식되어 돌아오겠지.


김종관의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은 제목 있는 콩트와 제목 없는 산문으로 엮인 책이다. 콩트는 대부분 관능적이고, 산문은 역시 김종관이다 싶게 좋다. 책에 대한 구독자 평이 그의 영화만큼이나 인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그의 책 중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콩트보다는 산문이 더 좋았고. 다시금 책을 들춰보다가 독수리라는 콩트가 2021년 그의 영화 <아무도 없는 곳>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팬심으로 기쁜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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