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il Sep 01. 2023

이기적인 사람의 마음으로 믿고 싶은 것

글을 위한 필사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이반지하>


이미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난 친구 직장 동료의 빈집에 나는 범죄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놓치지 않고 쫓는 두 눈이 있었다. 빽빽이 벽을 채운 다양한 그림과 크고 작은 액자, 눈 나빠진다 소리를 들을 만한 조도를 가진 요새 같은 집에 사는 앙큼한 고양이의 이름은 미스테리아. 과연 부를 수 있을까 의심했던 그 이름은 의외로 ‘테’에 강세를 두고 밌떼에랴, 라고 발음하면 마치 적당한 길이의 이름인 듯 착각할 수 있었다. 침구를 정리하려 분주하게 움직이던 내 오른손을 깊게 찍어 할퀴어 타지 생활의 설움을 북돋워주고, 구석이 많은 집의 어둠 속에 숨어 잠복과 공격을 일삼던 미스테리아. 그의 마음을 얻는 것은 의외로 끼니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통조림이 아니라 화장실 현장을 신속하게 복구하는 나의 행동력과 기민함이었다. 언제나 유난하다 소릴 듣는 후각이 감각한 즉시 똥 모래를 퍼내어 검거하고, 바로 신문지에 포장해 현관 밖 아파트 쓰레기통으로 구속시키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조금씩 내 다리에 몸을 스치는 듯하더니 이틀 만에 자신의 엉덩이를 내 몸에 착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창 쓰다듬을 즐기다 돌연 손가락을 물어버리는 그의 악취미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으며, 쥐인형이 달린 낚싯대를 들기만 해도 엉덩이를 심하게 흔들며 흥분하지만, 그렇게 전희만 즐긴 채 가버려 매번 찝찌름하게 끝나는 조루 같은 사냥놀이에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힘들었다. 2주 후 그 집을 떠나던 날, 미스테리아는 한참을 내 여행용 캐리어에 앉아 애잔하게 내 쪽을 돌아보는 일을 반복해, 첫날의 내 손등에게 그랬듯 내 마음을 발기발기 찢어놓았다.


이반지하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_ 샤미 라자 미스테리아>





분홍색 담요 사이를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인사를 건네는 내 손 등을 할퀴고 도망간 500그램도 안 되던 미물.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정도면서 오밀조밀 들어찬 눈, 코, 입 쫑긋한 귀로 내 마음을 헤집어 놓던 솜뭉치. 첫 이유식을 먹던 날 ‘욤욤욤욤’ 의성어를 쓰던 천재 고양이. 스크래처를 좋아해 발톱을 갈고리처럼 만들고, 그 갈고리로 스크래처만큼 좋아했던 나를 할퀴던 맹수. 구석구석 탐험대 총괄본부장, 꼭대기 정복대, 숨바꼭질 마니아. 너와 살며 수없이 겪은 기이한 일이라면 어떻게 뺏는지 미스터리로 남은 에어컨 먼지 필터가 거실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던 풍경, 싱크대 하부 장에 있던 사골 봉지를 물어뜯어 주방에 허여멀건 국물을 흩뿌려 둔 일, 노크도 없이 우당탕 점프로 내 방문을 벌컥 열고 위풍당당 입장하던 당돌함, 방망이질과 입질을 멈추지 않아 혼을 내면 반성 없이 되려 눈을 흘기거나 “웽”하며 픽 돌아가던 모습 같은 거, 현관문 앞에서 뭉그적거리면 “우애애애옹오오” 괴성을 지르고, 문을 열면 방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다 흥에 겨워 점프해 달려오던 내향인에게 과분했던 외향묘. 낯선 사람도 두루 발아래 둬 집사로 만들던 영민함, 두 시간째 계속되는 사냥놀이에 지칠 줄 모르는 너와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녹초가 되어가는 나를 눈물 쏙 빠지고 기분마저 상하게, 피가 철철 나도록 깨물고 가던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너는 고양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며 울며 친구에게 널 흉봤던 그런 기억. 그렇지만 이름을 부르면 “음-마”하며 도도도 달려와, 신체 어디든 나와 닿길 좋아했던 무릎냥. 지금도 부르면 “음-마”하며, ‘엄마’인지 ‘인마’인지 모를 대꾸로 꼬리를 세우고 뛰어올 것 같은 나의 호랑이.



너를 동생 집에 맡기고, 다시 데려오려 했던 그사이 인간들에게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애나 나나 너를 서로 키우겠다고 벌였던 타툼이 커질수록 불어난상처는 끝끝내 회복되지 않았고, 너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순간. 나는 동생도 너도 집사의 삶도 등졌거나 잃었거나 포기해 버렸다. 사람들은 내게 너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했고 어쩌면 너와 사는 내내 나는 그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너를 책임지지도 못하고, 네가 쓰던 물건을 버리지도 못하고.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너를 보지도 못하고. 사람이 늘 고팠던 너에게 하나뿐인 나보다 가족이란 울타리 아래의 지금이 나을 거란 확신만 그것만 믿고 싶다. 지척에 널 두고 길 위의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쏟는 나는 너와 함께할 수 없는 장난감을 가끔 사기도 하지만 울고 웃던 시간을 건너 자주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나만 고양이 없어’ 시절로 돌아간 듯 살고 있으니, 이기적인 인간의 마음으로 그저 ‘네가 사랑받으니 되었다’고. 네가 생각나는 날이면 그 말을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폭망, 비밀꿍꿍이 대작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