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il Sep 04. 2023

그녀와 내게 보내는 응원

글을 위한 필사 <거짓의 조금, 유진목>


나의 문제는 삶을 너무 조금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를 용서하거나 아빠를 이해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나는 조금 더 많이 걸을 수 있었지만 방을 어둡게 하고서 누워 있었다. 나는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고작 나를 둘러싼 거짓말들이 지겨워 죽으려고 했다. 아랍어를 읽고 쓸 줄 알았지만 이제는 전부 잊어버렸다. 피아노를 칠 줄 알았지만 이제는 칠 수 없다. 기타를 배우다가 금방 그만두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리지 않는다. 거울을 볼 때마다 다른 얼굴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 옷을 산다. 좀 더 밖으로 나가기 위하여 새 옷을 산다. 옷걸이에 걸린 새 옷을 입자고 생각하며 일어나 캄캄한 방에 불을 켠다. 새 옷을 입으려다 다시 침실로 돌아와 불을 끄고 눕는다. 쓸데없이 새 옷을 샀다고 자책한다. 내일은 꼭 새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자. 그러면 돼. 나는 잠이 든다. 새벽에 깨어나 아무에게도 전화할 수 없음을 안다. 베란다에 앉아 그칠 때까지 운다.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문신을 새긴다. 새 문신이 생길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그만하고 싶어서 영화를 본다. 잘 만든 영화를 보며 질투를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해낸 사람을 질투한다. 음악을 듣는다.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일어나 춤을 춘다.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동경한다. 무대에서 춤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이 되고 싶다.


유진목 <거짓의 조금_내가 아닌 모든 것>





낡고 닳아빠진 나를 버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다른 내가 되었으면, 또 다른 내일 저편의 다른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처연한 애달픔이 곳곳에 묻어나 함부로 울지도 못하겠다. 책을 읽으며 때때로 저 끝의 그녀에게 쪽지를 썼다. <나 역시 사랑받고 하는 것이 서툴렀다고,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했고, 흐느적거리며 종일을 보냈다고, 거울을 볼 때마다 다른 내가 되고 싶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해낸 사람을 질투했다고. 나 또한 내가 아닌 모든 것이 되고 싶었다고> 그렇지만 한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서 귤을 까먹고, 가을에는 작은 동산을 오르다 작은 도토리를 두서너 개 주머니에 담아 오자고, 여름에는 아직 그 맛을 모르는 평양냉면 맛을 느껴보자고, 봄에는 마음마저 일렁이게 꽃에 취해보자고 그렇게 살아 내보자고 책을 읽는 내내 그녀에게 소리 없는 응원을 보냈다. 그것은 내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오에 되새겨보는 마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