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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17. 2023

윙크와 사기

글을 위한 필사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할머니는 술과 노름을 사랑했고, 특히 화투판을 벌여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걸 즐겼다. 화투는 성냥갑 정도의 크기가 작고 단단한 플라스틱 카드로, 뒷면은 화사한 붉은색으로만 되어 있고 앞면에는 다양한 동물과 꽃과 이파리가 알록달록 그려져 있다. 이걸로 '고도리' 또는 '고스톱'이라고 부르는 게임을 하는데, 목표는 손에 들고 있는 카드와 탁자 위에 깔린 카드로 짝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테면 장미는 장미끼리, 국화는 국화끼리 맞추는데 한 ㅐ세트씩 모을 때마다 1점을 얻는다. 띠가 그려진 카드는 하나에 1점씩을, 새가 그려진 카드를 다 모으면 5점을 얻는다. 작은 동그라미 안에 한자 빛날 광이 쓰인 카드를 다섯 개 다 모으면 무려 15점을 획득한다. 3점을 먼저 획득한 사람이 "고"를 해서 더 많은 돈을 딸 회를 갖는 대신 이미 획득한 점수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위험을 감수할지, 아니면 "스톱"을 해서 게임을 끝내고 딴 점수만큼 다른 참가자들에게서 돈을 걷을지를 결정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 가족은 시끌벅적하고 속도감 넘치는 게임을 즐겼다.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_쌍꺼풀>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미셸 자우너보다도 고스톱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화투에 입문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승부욕 넘친 어린이였기에, 화투장에 빠지면 일찌감치 노름꾼이 되겠구나 싶게 몰입했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화투를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마도 열 살? 아니 열두 살 쯤이었나. 아마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외할머니 집은 우리 집과 매우 가까웠는데 설렁설렁 걸어도 오 분이면 충분했기에 엄마가 할머니 집으로 심부름을 시키는 날이면 꼼짝없이 할매 (강원도 태생인 나는 사실 할머니보다 할매가 입에 붙어서 지금도 할머니를 그리 부른다)에게 붙잡혀 민화투를 쳐야만 했다. 실제 민화투 룰이 무엇인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점수 내는 방법부터, 지역별로 방식 차이가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적힌 걸 보면서 무한도전 ‘명수는 열두 살’ 회차에서 편 가르기를 할 때 (데덴찌, 덴치 후라시, 엎어라 뒤집어라)하며 하나같이 자기 동네 방식이 옳다고 투덕거리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그때 내가 어려서 복잡한 방법은 빼버린 건지, 실제로 우리 동네에서 그리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할매와 나의 민화투는 피를 빼고 모두 점수로 환산되었기에, 할매가 껍데기라 불리는 피를 싹쓸이할 때면 내 얼굴은 대놓고 심통이 가득했다. 할매만 즐거운 민화투가 싫었고, 심부름도 싫었지만 심부름 값이라는 자본주의에 눈을 떴기에, 때론 몹시 기뻐하며 할매와 십 원짜리 화투를 치기도 했었다.

처음엔 그냥 할매가 하란 대로 하다가, 나중엔 할매 돈으로 화투를 쳤다가, 그다음에는 엄마가 준 심부름 값으로 판돈을 걸었다.

내 눈엔 노름꾼이나 다름없던 할매를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는가? 나는 돈을 잃었고,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는데 선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할매가 밉다'였을 것이다. 예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일찍이 조신하지 못하였기에 할매의 눈을 속여보기로 했다. 부러 주위를 산만하게 만든 후 밑장 빼기를 하거나, 나에게 청단, 홍단, 초약, 보너스 같은 게 돌아올 수 있게 의도적으로 화투를 섞었다.(오래 하진 못했다) 도박이 이렇게나 무섭다. 가족이고 뭐고 없다. 그제야 나는 할매를 이길 수 있었고 그것이 잘못인 것도 알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그때는 완벽히 할매를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알고 있던 막내딸의 첫 사기 행각은 손녀와 그렇게라도 민화투를 치고 싶었던 할매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화투가 끝나면 돌려받았음에도 고작 오백 원에 바들바들 떨었던 거라니...​


<H 마트에서 울다>를 읽다가 가끔 불우했고, 또 가끔은 눈물 나게 행복했던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알록달록 화려한 화투장으로 건져 올린 기억에 할매와 나의 추억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집 세고, 소주를 잘 마시고, 가끔 박하 향담배를 태우지만, 미셸의 할머니처럼 짓궂게 똥집을 하진 않았던, 나의 첫 사기극을 윙크로 모른 척해주던 할매가 모처럼 그리운 오늘. 새 나라의 할매는 지금쯤 한밤중이겠지, 부디 좋은 꿈 꾸시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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