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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09. 2023

小小 사냥꾼

글을 위한 필사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은 어린 시절에도, 지금도 끝이 없지만 그중 유리병에 대한 특별한 애호가 시작된 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부터, 유리병에 든 것이라면 향수나 화장품처럼 누구든지 매혹을 느낄 만한 사물들뿐 아니라 잼이나 음료수, 심지어 소금 같은 것마저도 쉽게 지나치질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나는 다 쓰고 난 유리병을 잘 버리지도 못한다. 음료수 병이나 와인병은 잘 씻어 말린 후 꽃을 꽂아두기도 하고, 파스타 소스나 고추장이 들었던 병 안에는 콩이나 흑미, 퀴노아 같은 곡식을 담아두기도 한다. 플라스틱 병 안에 담겨 있을 땐 시시해 보이던 것들도 유리병 안에선 어째서 근사해 보일까? 유리병은 그 자체로도 어여쁘지만 햇빛을 받으면 더욱 아름다워진다. 유리병이 아름다운 것은 섬세하고 연약한 물성을 지녔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견고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겨졌다. 펴지는 대신 차라리 산산이 부서지는 성질을 지녔고,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도도하고 관능적이다. 참기름이나 후추처럼 일상적인 식재료를 품은 병들조차 찬장 구석에 박혀 있을지언정 빛을 받는 순간 언제고 보석처럼 영롱히 반짝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무겁고 쉽게 깨진다는 점에서 플라스틱 용기보다 실용성은 뒤지지만, 유리병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용기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야'라는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_ 무용無用의 아름다움>






블루베리, 무화과 잼잼이들과 유자차와 토마토퓌레, 메이플 시럽을 품었던 유리병을 버리지 못했다. 평범한 모양에 그렇지 못한 이름 '집에 가지 마 베이베' 야관문주가 들어있던 병까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유리병이란 본래 품었던 잔향을 지우고, 열탕소독까지 마치면 언제라도 새것이 되는 존재였기에 용도가 정해지지 않아도 잘 씻어 말린 후 보관해 두었다가 나 역시 차를 넣거나, 곡식을 넣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아기와 자기가 많다고 취향 확고한 사람처럼 굴었지만, 사실은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 것도 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길에서 만나는 뽑기 통 하나 무심히 스치지 못하고,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뿌연 뽑기 통 옆면을 훔쳐보는 내가 비정상적으로 보일 때가 있었고, 오뚝이 루피가 들어 있다길래 먹지도 않을 사탕을 사고, 좋으면 좋아서 나쁘면 나빠서 기분에 따라 사고 모은 고만고만한 펜이나, 종이나 노트가 아까워 쓰지도 못할 때는 언니가 엄마한테 종종 하던 "아끼면 똥 댄데 이~"를 내게 한 데도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생각이 널뛰는 어떤 밤에는 나는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小小 사냥꾼이 된 건 아닐까? 자조의 늪에 빠지기도 했었다. 나 같은 사람은 나뿐이라 좀처럼 이해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으며 곳곳에서 '그렇지, 그렇지'하며  대놓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내게 이 책의 감상평을 묻는다면 "책에 담긴 배우고 싶은 것과 훔치고 싶은 묘사와 시간의 흐름과 색을 돌담 삼아 계절을 만나니, 오늘 만난 하루가 새삼스럽게 아름다웠다고" 간지러운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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