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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07. 2023

너저분한 진심

글을 위한 필사 <일기시대, 문보영>


진심은 마음속에 있고, 언어를 통해 끄집어내는 거라고 믿었는데 일단 너저분하게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은 다음에 거기서 진심을 찾는 게 시 같았다. 나는 아무 말이나 뱉어 냈다. 나도 모르는 말들을 미친 듯이 쏟아냈는데 뱉고 나니, 거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래서 진심은 너저분한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시를 가져갔다. 선생님이 시를 읽다가 또 펜을 탁, 하고 놓았다. 그가 말했다. "시가 180도 바뀌었네?" 그러더니 낙엽 선생님은 물었다.


"이 문장은 무슨 의미지?"

나는 대답했다.

"음......사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잘했다. 네가 쓰고 네가 알아야 할 때가 있고, 네가 쓰고도 네가 몰라야 성공할 때도 있다."


문보영 <일기의 시대_시인기 時1 - 낙엽 인간과의 만남>





​일기의 시대가 좋았던 건, 순전히 에세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을 시집으로 먼저 만나지 않은 덕분에, 별천지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문보영  시인>의 에세이를 보며 시로 가는 문턱, 시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시’가 쉽다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라는 문을 통과하고 나니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은 오늘 필사한 부분이다. 살면서 '너저분'이란 단어가 이토록 시원하게 가슴을 뚫고 지나간 적이 있었던가? 마음을 뒤집어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에 구차하게 앞질러 나가는 말들에 울타리가 처진 기분이었다. <<잘했다. 네가 쓰고 네가 알아야 할 때가 있고, 네가 쓰고도 네가 몰라야 성공할 때도 있다.>> 어른을 글로 표현하자면, 이런 것일까? 나는 낙엽 선생님까지 한데 묶어 원 플러스 원으로 그 둘이 좋아지고 있었다.


나는 왜 시를 배우지 않았을까? 일찍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놓은 적이 있다. 시는 배우지 않고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쓸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날실과 씨실의 촘촘하고도 얼기설기한 것들의 총합. 특별하고도 비범한 재능.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표현하는 능력. 시는 그런 사람들의 첫 문장, 마침표로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문보영 시인의 글과 시를 읽으며 시에도 MSG, 이를테면 유머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기발해 웃든, 어이가 없어 웃든. 상상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유머란 얼마나 귀한 것인가.

계속해서 쓰고 싶다. 쓰다가 너저분 언저리에 도달하고 싶다. 은은한 유머를 함께 구사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러다 시가 얻어걸리면 깨춤이라도 출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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