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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06. 2023

실타래들

글을 위한 필사 <열다섯 번의 밤, 신유진>


나는 오랫동안 그와 보낸 두 번의 여름이 반지하 방에 숨었던 무기력한 시간이라 생각했었다. 한동안 커트 코베인의 노래를 듣지 않았던 것은 없어지지 않는 여름 냄새를 날려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끈적이는 장판이나 더운 벽지처럼, 내가 사는 공간에 커트 코베인의 여름이 오래 남는 것이 싫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쉽게 바뀌지 않는 나에 대해 그때만큼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반지하 방에서 커트 코베인과 그런지 그리고 나를 배웠다. 10년째 봄이 오면 루시드폴을, 여름에는 들국화와 토이를, 가을에는 성시경과 김광석을, 겨울에는 이소라를 듣는다. M에게 달력보다 더 정확한 선곡이라고 놀림을 받지만, 그 오래된 노래들은 한 겹씩 자란 나를 들추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덤덤하게 말해 준다. 음표만큼 숨겨진 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 아닌 척 따라 부를 수 있어서, 누군가와 함께 듣지 않아도 좋은, 혼자 들어서 더 편한 노래들이다. (...) 밤이 쏟아졌다. 여름 냄새가 났다. 반만 깨물어 먹은 복숭아와 눅눅해진 프링글스, 밤이슬이 내린 반지하에 숨은, 웅크린 스물다섯의 냄새였다.


신유진 <열다섯 번의 밤_커트 코베인에 대해 배웠던 모든 것>





책을 읽다가 이벤트처럼 커트 코베인과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 찾아들었고 곡이 끝나자, 자리로 돌아와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였다. 나는 라디오와 함께 성장했다. 마왕 뒤로 유희열, 성시경까지 듣고 라디오를 졸업했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종종 생각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김광석과 윤상, 때때로 윤종신과 토이를 들었고 틈틈이 이소라와 김동률을 들었는데, 고집도 물러지는 것인지 언젠가부터는 그들보다 인디 음악을 자주 듣고 있다. 주말에 묵은 서랍을 정리하다 발견한 것은 사각의 MP3였다. 그 아이리버에는 한때 나를 울렸던 사람이 넣어준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음악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지만. 추억과 별개로 주파수를 맞추듯, 그 작은 기계가 홀로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충전기를 생각하다 마음이 헛헛해졌다. 내게는 아직 버리지 못한 유물 같은 MP3가 많다. 유물이라고 말하지만 귀엽고 귀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뭉뚱그린 추억임을 기억의 실타래임을 영영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핸드폰 하나면 노래도 라디오도 들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가끔은 물성 있는 것들이 그립다. 주파수를 맞춰 듣는 라디오와 그 속에서 만나는 세상 사람들의 사연과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샀던 설렘들은 너무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고, 블루투스 스피커조차 연결하기 번거로운 밤 깊은 밤엔 옆에 놓인 컵에 핸드폰을 넣어 증폭된 소리에 몸을 뉜다. 오늘이 그런 밤이다. 아직 녹지 않은 얼음 커피와 빈 컵에 자리를 틀고 앉은 핸드폰에서는 정우물의 날개가 흐르고, 미지근한 여름 위로 선풍기 바람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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