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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30. 2023

맥시멀리스트의 아기자기한 삶

기록은 기어코 기억이 된다_집


우리 집에는 아기와 자기가 많다. 어째서 오밀조밀 잔재미가 있어 즐거운 것들에게 이름 붙여진 단어가 ‘아기자기’인지 소리 내어 불러보면 별다른 상상력을 요하지 않아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들이 뭉게뭉게 떠올라. 척 갖다 대면 착 붙은 마그넷과 닮았다. 나는 예쁘고 멋지고 귀여운 것에 약해 영혼과 지갑이 동시에 털리는 편이다.


지금은 아파트 소유와 함께 상당한 빚쟁이가 되었기에 튀어 오르는 소비를 간신히 누르고 있지만 예전의 나는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에 제어랄 게 없었기에 월급은 급물살을 타고 꽂히는 즉시 몇만 원의 호의를 남긴 채 나를 떠났다. 소비 관념 없던 그때를 무척이나 후회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내가 정신 차리고 빚을 갚는 데만 몰두하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 '무척'이란 단어는 슬그머니 빼고, 후회한단 말만 써야겠지만 가계부에 크고 작은 구멍을 만들며 이것(귀여움) 저것(쓸모) 사이(생명)를 잇는(나) 맥시멀 리스트의 삶을 꽤 만족하며 살고 있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 뽑기 통에서 건져 올린 탱탱볼이나, 여행 다니며 수집하듯 모은 열쇠고리, 작은 인형, 어른이를 위한 한정판 피규어들은 무용 세계의 친구들이고, 언제 어디서나 이만큼의 소비는 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모았던 크기도 질감도 다양한 메시지 카드나 편지지, 이제는 너무 많은 펜과 연필, 읽지 못하고 쌓아둔 책이나, 예쁘다는 이유로 샀지만 쓸모의 영역으로 분리된 마스킹 테이프, 잔, 선풍기, 조명, 랜턴은 유용 세계의 친구들이 되었다. 그들 모두는 집이 생기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룬 무용과 유용의 영역이지만 푸르른 것들은 조금 다른 의미의 아기자기 확장판으로 적절한 관심과 수고스러움을 동반해야만 유지 가능한 개성을 지닌 개체들이다.


옹골진 레게머리 쥐꼬리선인장은 가시에 찔리는 즉시 피도 눈물도 없는 친구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고, 아스파라거스 삼 인방 메이리, 나누스, 바르가투스는 수형이 제멋대로지만, 멋대로 예쁜 아이들이다. 하얀 꽃을 피워내는 베고니아 마큘라타는 뾰족한 잎사귀마다 흩날리는 눈이 그대로 박혀있는 듯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나를 애태웠던 아레카야자, 빨간 열매 꽃을 피우는 디시디아, 느리게 자라는 세로그라피카 외에도 호명되지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친구들과 지금의 공간을 함께 나눠 쓰고 있다.


햇빛과 바람이 공존하는 곳에는 화분들이 살고, 시선이 닿는 곳곳에 올려놓은 피규어들은 귀여움을 뽐내며 누군가에게 마음을 쓸 때 유용한 펜과 종이들이 삶 지근거리에서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맥시멀리스트 오늘도 아기자기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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