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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27. 2023

아무튼, 이모튼 무리하지 않기!

기록은 기어코 기억이 된다_운동


이십 대 후반이 되어 시작한 달리기는 기어이 나를 마라톤 앞까지 데려갔고, 운동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뻔하면서도 달콤한 것이어서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체감하면서부터는 더 오래, 더 많이 뛰었다. 그 시절의 나는 무모했고, 자신만만했으며 지구력만큼 정신력이 정신력만큼 체력이 좋았다. 뛰지 못할 이유를 찾지 못해 뛰었고, 뛰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이 좋아서, 몸이 주는 뻐근한 신호가 뿌듯함이 되어 쌓여갈 때마다 나의 젤리, 관절은 닳고 있었을 것이다. 몸을 돌보는 운동을 하는 줄 알았더니, 뛰는 자신에게 취하여 몸이 상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나를 믿었던 것일까? 아니 내 몸을 얼마나 자신했던 것일까? ​


혼자 하는 운동에 도가 텄던 터라, 짝 없이 합을 맞춰도 되지 않는 운동을 해왔다. 운동으로 인맥 확장을 해보고 싶을 정도로 대담하지도 않았고, 친목 도모가 세상 제일 어려운 내향인이라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의 운동을 홀로 하는 것이 좋았기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트레이 밀에서 그다음은 운동장에서 또 그다음은 곳곳의 마라톤 대회를 자발적으로 출전하여 한바탕 뛰고, 러너스 하이와 젖산을 동시에 끌어안고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돌아왔다. 달리기와 같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운동을 할 때, 몸은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여기서 글리코겐이 에너지원으로 전환될 때, 생성되는 에너지 대사 부산물이 젖산이다. (쉽게 말하면 근육피로고, 이것이 쌓이면 근육통이 오래가는 것) 그래서 나는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평소 컨디션을 되찾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모두가 나에게 무리한다고 했고, 온몸이 구석구석 아팠으므로 나도 내가 무리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운동 없이 뭉친 근육을 달랠 수 없어 선택한 방법이기도 했다.

후유증이 시작되었다. 비가 오기 전에 무릎이 콕콕 쑤신다는 얘긴 어른들이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나이로 따지면 나도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먹었지만.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기에 그 말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다만 말보다 빠른 무릎이 자처해 날씨의 요정이 되는 날이면 마음이 몹시 시무룩해졌다. 그 무렵 독감 때나 겪어봤을 이마의 열감을 무릎에서 느껴지기 시작했고, 조금만 무리하면 무릎은 자가호흡을 시작한 듯 가벼운 경련 같은 '콩닥콩닥'을 시작하여 내 가슴마저 '두근두근'하게 했다. 처음 겪어보는 증상이 늘어나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을 때 찾아간 병원에서 무릎뼈 관절 연골이 부드러워 약해지는 것으로 무릎연골연화증과 디스크까지 발견했다. 물론 전에도 임시방편 때우기 치료를 많이 받아왔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던 것이 동네 명의 선생님을 예약 한 달을 기다려 만난 것이었기에 마음만은 확실히 달랐다. 선생님은 아주 빠르고 친절한 목소리로 “계단은 올라갈 때만, 무릎이 아플 땐 무릎을 펴고 걸으세요. (일명 뻗다리,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면 웃음을 숨길 수 없는 무릎 펴고 걷는 자세) 운동은 그림 보고 20회 최소 2세트씩 무릎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얘네가 딱딱딱 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안 내니까. 몸무게 관리 중요해요. 무조건 유지하세요. (무릎에 무리가 간다는 요지), 허리도 그림 보고 운동하고, 철봉이 싸니까 사세요. 힘 빼고 매달리는 것만으로 도움이 됩니다.” 등등의 말들을 하시고 물리치료와 처방전을 내리셨다. 그때 선생님은 무릎보다 허리가 더 안 좋으니 스탠드 책상을 사용했으면 한다고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하셨다. 물론 나는 그 말을 무릎은 괜찮다는 말로만 입력하는 멍청이였지만 한동안 정말 열심히 병원에 다녔고, 운동을 했고, 약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쿼시에 빠졌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신이 나서 무리하다가  또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요리조리 내 무릎을 살펴보시더니 아침에 출근해서 내가 먹는 건데 하며 얼핏 보였던 글씨가 아무튼 인 것처럼 보였던 이모튼이란 약을 추천했다. 골관절염 보조치료제인 그 약 석 달 치를 한 번에 처방받으니, 이전보다 분명하게 나의 퇴행을 실감했다. 선생님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스쿼시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스쿼시를 1시간만 하자고 마음먹고서 2~3시간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3km만 뛰자고 나가서 10km 이상을 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리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애초에 모르는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 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스쿼시 하며 너무 신이 나, 와중에 jtbc 마라톤 full 코스를 신청했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놀라웠다. 할 수 있을지 몰라 마라톤 하며, 눈에서 광기 어린 불꽃을 마구 뿜었을 게 뻔한 기억에도 없는 과거를 회상했다. 다시 마음부터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정신은 나를 어른이라 인정할 수 없대도 무릎은 운동할 때마다 나에게 워키토키를 마구 쳐댔으니 내 몸은 어른이 맞았다. <오래오래 좋아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를 필사 하며 '책의 제목처럼 나는 정말 그게 필요하다. 그런 당연하고, 어려운 마음이 항상 필요하다.'라고 썼던 것은 매 순간 나를 소모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무리해 왔기 때문이었다. 무리하지 않고 연골 지키기, 무리하지 않고 허리 지키기, 무리하지 않고 이런 나를 지키기, 무리하지 않고 좋아하기, 운동하기, 글쓰기.


나는 이제 Just Do it! (일단 해 봐)가 아닌, 아무튼, 이모튼! (무리하지 않기!)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아무튼, 이모튼! 이라니 저스트 두잇! 만큼 입에 착 붙어 나는 조금 신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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